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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성 잃은 현대식 함정|한일호 침몰의 원인과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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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일호 조난사고는 사흘이 지나도록 뚜렷한 사고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안개 속에 흐려있다. 『해군배가 객선을 들이받았다』고 몰려든 유족들은 울분을 터뜨리지만 해군당국은 『책임이 없다』는 공식발표로 이에 맞서고 있다. 공평하게 사고원인을 가려내 줄 것으로 기대되는 해난심판위원회와 검찰·경찰 등은 당사자의 일방이 수사권이 미치지 못하는 군부대인데다가 한일호의 선장과 기관장 등이 실종되고 없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해군배가 2.4「마일」거리에서 한일호를 「레이더」에 포착하고 약8분만에 서로 충돌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8분 동안 해군73함은 한일호에 대해 위험신호로 「단성 5발」을 보내면서 피해주기를 바랐는데 한일호가 뱃머리를 돌리지 않아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고 해군은 주장했다.
호위구축함 73함은 「레이더」장비와 갖가지 정밀한 계기를 갖춘 1천8백「톤」의 현대식군함이고 한일호는 불과 1백40「톤」의 목조선이다. 어느 배가 어느 배를 먼저 피해주고 또 피할 수 있었을까는 사고당시의 상황여하에 달려있는 것. 16일 밤 검·경 합동 수사반(반장 나호진 부산지검 부장검사)의 한 관계자는 『73함이 위험신호·변칩 등 사고방지를 위해 할 일을 다했다고 하나 그렇다고 반드시 한일호가 책임을 져야한다고는 볼 수 없다. 아직 최종적인 책임한계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73함이 사고 당시 보다 더 노력했다면 사고방지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함축성 있게 말했다.
해군당국의 공식발표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러 군데 있다. 발표에 의하면 동해 초계임무를 마치고 73함 충남호가 가덕도 근해를 침로 2백60도로 귀분. 9시 48분 진해입항을 위해 변침(변침)을 시작. 침로 3백40도로 변침을 끝낸 것은 밤 9시50분. 9시51분. 1천「야드」전방에서 1백40도 방향으로 남하중인 한일호의 청등을 발견, 73함은 오른쪽(가덕도 연안쪽)으로 다시 변침, 52분, 단성 5발의 위험신호를 보내며 기관을 정지하고 후진 전속, 퇴함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19「노트」의 센 속력으로 전진하던 73함은 4.5「노트」의 여속 때문에 계속 바깥쪽에 있었다.
여기서 첫째, 문제가 되는 것은 5천「야드」전방의 반대방향에서 전진해오는 대상물(한일호)을 발견했을 때 그배 와의 교차점은 1, 2분내면 계산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계산이 정확히 그리고 빨리나왔다면 적어도 충돌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항해전문가들의 말이다.
둘째, 1천「야드」전방에서 73함이 위험신호를 한 것은 이미 충돌직전의 일. 이 거리에서 한일호는 미처 변침 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19「노트」와 13「노트」로 맞 보고 달리는 두 배의 충돌유예가 불과 1분38초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73함의 한 승무원 말에 의하면 이때 73함의 속력은 22.5「노트·풀」. 그런가하면 해군은 이때의 한일호의 속력을 13「노트」라고 발표했는데 9「노트」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한일호의 선력에서 밝혀졌다.
셋째, 항로문제만 하더라도 충돌현장과 육지와의 거리가 불과 3백「미처」밖에 안 된다면 2천「톤」급의 함정이 한일호 보다도 더 육지에 가까운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나온다. 이날 이 해역에는 파고 2「미처」의 거센 물결에 강한 서북풍이 휩쓸어 73함이나 한일호가 모두항로를 바꿔 연안으로 바싹 붙어 가다가 서로 부딪친 것이 아닌가하는 견해도 있다.
넷째, 한일호는 좌우현에 홍등과 녹등을 켜고 앞뒤에 훤히 불을 켜고 있어 육안으로도 볼수 있었고 작전 임무중인 73함은 좌우현의 홍등 녹등 이외의 불을 켜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보면 한일호가 충남호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다섯째, 2「마일」밖에서는 「권리선」「의무선」이 없다는 점을 들어 73함에도 책임이 있다는 한 수사반의 말도 있다. 【진해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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