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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여우의 결혼|키징거-브란트의 서독연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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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정계의 「고무사자」(루트비히·에르하르트)는 그의 「바통」을 「여우」(쿠르트·G·키징거)와 「곰」(빌리·브란트)에게 넘겨주고 정치무대에서 물러났다.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합교섭에 있어 교묘한 정치적 수완을 거침없이 보인 「키징거」수상- 입담 좋고 우아하며 날카로운 용모와 은발을 가진 그는 종종 서독의 언론계로부터 「여우」로 비유되고 있다. 「곰」은 억세고 거친 얼굴에다 우렁찬 음성을 가진 다름 아닌 「빌리·브란트」 부수상 겸 외상의 「니크·네임」.

<17년 투쟁에 매듭>
62살의 남부「독일」 「가톨릭」신자이며 전「나찌」 당원인 기민당의 「여우」와 북부「독일」의 신교도인 사민당의 「곰」이 정치적 결혼(?)을 한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게 보인다. 이 연립정부의 수립으로 지금껏 17년간에 걸친 흑색(기민당)과 회색(사민당)의 치열한 투쟁은 매듭을 짓고 서독정치의 양극은 안으로 굽어 서로 손잡게 되었다. 하지만 오는 69년 선거때까지 이 새 정부가 얼마큼 보조를 맞추어갈지? 성급히 진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현재 양당은 새로운 계획을 대담하게 짜내려 들지 않고 기존 행정을 어지럽힐 행정부의 대폭인사이동도 꺼려하고 있는 등 새 정부의 「조화」와 「안정」을 위해 온갖 힘을 쓰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여우」와 「곰」의 밑바닥 생리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키징거」수상은 취임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여태 「에르하르트」 정권때의 참모들을 계속 두고는 그의 사람으로 대체하는데 서두르지 않고 있으나 「브란트」는 「베를린」으로부터 그의 측근자들을 외무성으로 데리고 왔다.

<예기 못했던 사건>
한때 「나찌」당원이었던 사실로 국민의 비판을 받았던 사람과 철저한 사회주의자란 이 두 판이한 경력을 지닌 「키징거」와 브란트」가 서독정치의 정상에서 손을 잡으리라고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바다. 기민당에 들어간 「키징거」는 49년 하원의원이 되었다. 외교문제의 권위인 그는 곧 「아데나워」전수상의 후계자로 손꼽혀 하원의원의 외교분과 위원장을 거쳐 주미대사를 지냈으며 그의 인기는 날로 상승했으나 「아데나워」와 의견충돌로 「스투트가르트」로 건너가 8년간 주지사로 있으면서 「본」정계와는 인연을 끊고 있다가 「에르하르트」의 위기가 닥치자 기민당은 남북부 독일에서 환영받을 그를 요구했다. 「브란트」는 56년 소련의 「부다페스트」침략에 격분한 서「베를린」사람의 감정을 누르러지게 하자 「베를린」의 영웅이요, 자유시의 「상징」이 되었다. 다음해 그는 가장 나이어린 「베를린」시장이 되었다.

<서독정계의 새 모험>
「브란트」와 「키징거」간에 아직은 이렇다할 냉전의 표시는 없다. 「브란트」의 한 측근자는 『여러분들은 결혼하면 불화가 생길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되지만 밀월여행 중에 그러한 불화가 생길 리는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은 다음 총선이 닥치면 그 밀월의 한계는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재정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에 큰 견해차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연립내각은 필연적으로 와해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지도자간의 불화는 막후에서 대부분 조정되기 때문에 표면상 「키징거」가 실권을 쥐고 있는 듯 보일 것이나 실상 「브란트」의 사전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새 출발의 계기>
여하튼 「키징거」·「브란트」연합은 서독정계에 새로운 모험이 아닐 수 없지만 최소한 「본」정부가 지난 18년이래 최초로 새 출발을 할 계기를 갖은 것만은 분명하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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