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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도 막고 면역력도 높이고 ‘노인용 독감백신’ 일거양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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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중인 딸 부부를 돕기 위해 손녀를 돌보는 김혜숙(65·서울 강서구)씨. 요즘 독감 합병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일주일 전부터 심하게 기침을 했지만 독감백신을 맞은 터라 가볍게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폐렴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예전에 독감에 걸렸을 때 아이에게 전염될까 봐 돌봐주지 못했다”며 “이번엔 일찌감치 백신을 맞았는데 고생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봄 인플루엔자(독감)가 유행하고 있다. 독감은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바이러스에 취약할 때 잘 발생한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날씨엔 독감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새 독감환자가 1.5배 증가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정희진 교수는 “우리나라 독감은 크게 전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즈음 절정을 이룬 후 차츰 수그러들다가 봄 환절기 3~5월 또 한 차례 유행한다”고 말했다.

노년층 백신 효과 6개월이면 끝

노년층은 면역력이 떨어져 독감 합병증 위험이 높다. 한 노인이 병원에서 독감 주사를 맞고 있다. [김수정 기자]

문제는 면역력이다. 65세 이상 노년층은 면역체계 노화로 몸을 지키는 항체가 예전보다 덜 생산된다. 면역반응도 예전 같지 않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도 젊은 층보다 약효가 덜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텍사스대 의대 장 닝 제니 박사 연구팀은 노년층(70세 이상 성인 4명)과 청년층(8~30세 13명)의 독감백신 효능을 비교했다.

이들의 혈액 샘플을 채취해 독감 바이러스를 막는 항체를 생성하는 B세포 수치를 확인했다. 그 결과 노인은 젊은 연령층에 비해 B세포 수치가 낮았다. 유타대학 소아전염병실장 앤드루 파비아 박사는 “노년층은 젊은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떨어져 독감백신에 의한 면역반응이 약하다”고 말했다.

노인층은 독감백신 효과의 지속기간도 짧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팀은 2007~2008년 국내에서 독감백신을 맞은 716명을 대상으로 접종 후 12개월까지 효과를 추적 연구했다. 그 결과 대부분 접종 후 6개월까지 예방효과(면역지속력)가 유지되다 이후 점점 줄어 12개월째에 이르러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년층은 접종 후 6개월에 이미 의학적으로 예방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독감 합병증도 주의해야 한다. 노년층은 단순한 독감이 폐렴·뇌염·심근염·라이증후군 같은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존 심혈관질환이나 호흡기질환이 악화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에서 매년 독감으로 50만 명이 숨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사망자 대부분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 노년층이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통계청의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 수 및 사망률(1999~2009년) 보고에 따르면, 인플루엔자로 인한 인명피해 중 65세 이상 노년층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이·신체 특성따라 백신 선택 고려해야

효과적인 예방법은 단연 백신 접종이다. 하지만 독감백신을 접종해도 인플루엔자 감염을 100% 막지 못한다. 정희진 교수는 “건강한 청장년은 독감백신을 맞은 뒤 70∼90%가 효과를 보지만 65세 이상 노인은 접종효과가 50% 이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역증강제를 추가해 면역반응을 높인 노인용 독감백신이 나왔다.

정 교수는 “면역증강제가 들어있는 독감백신을 맞으면 노년층도 청장년층과 비슷한 예방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정부에선 현행 일괄 접종방식보다 연령·신체 특성에 따라 백신을 맞도록 백신지원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노년층 독감백신 예방효과를 높이기 위해 백신 용량을 늘리거나 면역증강제가 포함된 백신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독감백신은 건강한 상태에서 접종한다. 만일 접종 당일 열이 있거나 몸이 좋지 않으면 접종을 미룬다. 통증이나 발열 같은 부작용은 하루 이틀이면 없어진다.

예방백신 접종 후 방어 항체가 만들어지기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에 독감에 걸릴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글=권선미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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