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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아름다운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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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8년 만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콘클라베가 새 교황으로 선출한 아르헨티나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발코니에 나타나 축복의 성호를 긋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은 환호하며 외쳐댔다. ‘비바 일 파파!’

 남미의 부조리한 현실에서 싹튼 해방신학은 폭력적 계급투쟁의 혁명이념과 손잡으면서 신앙의 바탕을 스스로 상실하고 말았지만,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종교의 사명에 새로운 성찰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남미 출신의 예수회 수도사로 최초의 교황이 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첫 기자회견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강조했다. 대주교 시절에도 관저를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했다는 새 교황은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택했다.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기원하며 낮은 곳, 소외된 자리를 찾아 나눔과 섬김을 실천했던 아시시의 성인, 그 사랑 가득한 이름에서 목자(牧者)의 신실한 영적 아우라가 느껴진다.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2월 고령으로 직무 수행이 어렵다면서 갑자기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이다. 교황의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단 세 번에 불과할 만큼 매우 드문 일이다. 1294년에 최초로 사임한 첼레스티노 5세는 깊은 신앙과 청빈한 삶으로 많은 신자들의 존경을 받은 수도사였는데, 그는 교황이 되어서도 궁정의 전용 침실을 쓰지 않고 교황청 안에 따로 지은 오두막에서 지냈다고 한다. 새 교황 프란치스코의 행적과 퍽 닮았다.

 그러나 신앙심만으로는 음습한 권력의 세계를 헤쳐 나가는 일이 꽤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폴리와 아라곤,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줄곧 시달리던 첼레스티노 5세는 취임 5개월 만에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교황의 옥좌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아마도 진짜 이유는 세속화된 교황직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로마의 계관시인 페트라르카는 교황의 사임을 미덕으로 칭송했지만, 열렬한 교황 숭배자인 문호 단테는 첼레스티노 5세가 교황직을 함부로 떠났다는 이유로 『신곡』에서 그를 지옥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단테가 첼레스티노 5세를 만나려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가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퇴장은 화려한 등장보다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아름다운 퇴장의 모범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80%가 넘는 국민의 지지와 주변의 강력한 연임 권유를 뿌리치고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으로 물러났다. 만델라는 이런 퇴임사를 남겼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나를 키워준 계곡과 언덕, 시냇가를 거닐고 싶다.” 마치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듣는 듯하다. “오직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돌아갈 뿐, 하늘의 뜻을 즐겨 받드니 무엇을 의심하고 주저하랴(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이달 초에 퇴임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다른 공직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직원처럼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청백리의 반듯한 몸가짐에서 우러나는 감동이 뭉클하다. 반면에, 너무 많은 것을 거머쥐고 온갖 특혜를 누려온 사람들이 고위 공직 후보자로 나섰다가 국민에게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싸구려 엽색소설 같은 성 접대 동영상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동영상의 주인공으로 지목된 법무부 차관은 결국 사임했다. 사실 관계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명예로운 퇴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탐욕과 부패에 찌든 특권층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가슴엔 피멍이 맺힌다. 국민통합은 지갑이 아니라 가슴에서 시작된다. 물질적 복지의 확대보다 더 시급한 것이 심리적 양극화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자신의 부귀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부(富)와 권력을 세습하고 심지어 성직의 강단마저도 대물림하는 기막힌 세상이다. 저들이 따른다는 십자가는 ‘버림’이 아니라 ‘누림’이었던가. 수천억원대의 건물을 짓고 있는 어느 대형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학위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다른 것도 아닌 신학박사 학위논문이라니, 그 신학에는 대체 어떤 신앙이 담겨 있을까.

 버릴 때, 물러날 때, 내려놓을 때를 아는 지도층이 두터운 사회일수록 건강하다. 전임 교황의 사임을 두고 성추문과 부정부패 등 바티칸의 추잡한 현실 때문이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지만, 명예롭게 물러나 ‘명예교황’의 칭호를 얻은 베네딕토 16세 자신은 재임 때보다 더 충만한 영성의 은총을 체험하고 있지 않을까. 그의 아름다운 퇴장과 ‘낮은 곳’을 지향하는 새 교황의 등장으로 바티칸에 역동적인 교회개혁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이 우 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