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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일본 자동차 제2차 미국 침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트로이트 모터쇼의 개막일. 취재진에 둘러싸인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새로 출시한 다목적 레저차량 패시피카(Pacifica)의 ‘획기적’ 스타일을 선전했다. 간부들이 관객들에게 무대 위로 올라와 시승하라고 권하자 닛산의 수석 디자이너인 나카무라 시로가 기자들을 밀치고 나와 맨 먼저 패시피카의 내부를 점검했다. 나카무라는 빨리 타보고 싶어 안달이 난 기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둘러볼 때 자신이 가장 먼저 경쟁사 차를 살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표는 고객을 잡는 것이다.”

이미 패밀리카 부문에서 정상을 차지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이제는 미국 자동차 업계 최후의 보루인 다목적차량(SUV)·미니밴·픽업트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기세가 꽤나 맹렬하다. 분석가들은 도요타가 올해 크라이슬러를 제치고 미국 자동차 업계 서열 3위에 올라설 수 있다고 말한다. 크라이슬러는 2001년 판매고가 10% 줄었다.

도요타와 혼다는 지난해 미국에서의 기록적 판매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짭짤한 수익을 올린 자동차 회사가 됐다. 이들은 이제 혼다 파일럿과 렉서스 GX470 SUV 같은 신차들을 생산한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북미지역의 생산도 강화하고 있다. 2005년께는 그들의 북미지역 공장이 10여개를 넘고 연간 생산량도 1996년 대비 50% 증가한 4백50만대에 이를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그 도전을 막아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래야 좋을 것이다. 미국 업체들은 대부분의 수익을 대형차량 부문에서 거두니 말이다. 미국의 경제둔화로 자동차 판매가 줄고 외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국 업체들은 요즘 고전을 면치 못한다. 지난 14개월 동안 제너럴 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의 빅3는 무려 7만3천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들을 발표했다. 제리 허시버그 前 닛산 디자인 실장은 “일본 업체들로부터 또 한차례 태풍이 불어올 것이다. 이제 빅3는 일본 신차들과의 경쟁을 피할 길이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자신만만한 미국 업체 간부들은 일본이 그동안 뒤져 있던 SUV·트럭 부문에서 미국을 따라오려고 애쓰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GM의 수석 디자이너 웨인 체리는 “일본 업체들이 시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끼어드는 것이다. 시장 룰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빅3다”라고 주장했다. GM은 신차 허머 H2와 인기높은 셰비 트레일블레이저 SUV 등의 묵직한 차종으로 일본 업체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내년에 포드는 인기종목인 F 시리즈 픽업트럭을 개량해 초대형 통카트럭처럼 보이게 만들 예정이다. 많은 미국 업체 간부들은 일본의 급부상을 엔화 약세 덕으로 돌린다.

아메미야 고이치 아메리칸 혼다 사장은 “엔화 운운은 그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업체들은 이미 과소평가에 익숙하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그 때문에 그들이 경쟁우위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 첫째 증거는 혼다의 미니밴 오디세이의 비밀스러운 성공이다. 3년 전 오디세이를 출시하면서 혼다는 연간 6만대만 만들 계획이었다. 크라이슬러의 연간 판매고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크라이슬러가 곁에도 못오는 사양을 제공했다. 독창성을 발휘해 셋째칸 의자를 바닥에 접어넣을 수 있게 해 적재공간을 늘리는가 하면 고품질로 승부를 건 것이다. 그 결과 크라이슬러의 미니밴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한편 오디세이 구매자들은 표시가에서 한푼도 안깎아주는데도 몇달씩 기다려 차를 산다.
이제 혼다는 연 16만대의 미니밴 생산시설을 갖춘 새 오디세이 공장을 앨라배마주에 열었다.

밥 루츠 GM 부회장은 “혼다는 오디세이로 배트 중심에 제대로 공을 맞힌 것”이라고 말했다. 혼다 어코드와 도요타 캠리가 미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패밀리카가 된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지난 5년 동안 빅3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8.7%포인트 줄어든 반면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은 4%포인트 올랐다.

이제 일본 업체들은 트럭시장에서도 과거의 성공이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올여름 출시될 8인승 혼다 파일럿은 포드의 베스트셀러인 익스플로러에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분석가들은 2만8천달러짜리 파일럿이 잘 팔릴 것으로 예상한다. 인기높은 아큐라 MDX와 동일한 고급 차체를 써서 만들기 때문이다. 인기좋은 렉서스 RX300을 대중화한 도요타 하이랜더는 지난해 출시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널찍하고 편안한 신차 렉서스 GX470을 통해 도요타는 어느 고급 브랜드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고급 SUV를 생산하게 됐으며 이제는 일본도 성능이 떨어지는 트럭이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게 됐다. 2005년이면 디트로이트의 최대 사업부문인 대형 픽업트럭이 혼다·도요타·닛산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닛산은 내년에 신 모델 ‘알파트럭’을 내놓는다. 미국의 새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일본 업체들은 미국인들의 취향에 빨리 반응하고 수입 트럭이 빅3만 못하다는 오명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같은 대결은 클리블랜드의 조경사 릭 빈센트 같은 소비자들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다. 빈센트의 크라이슬러 다지 램 픽업트럭은 문턱이 닳도록 정비소를 드나들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한 전문지로부터 호평받은 도요타 툰드라를 샀다. 빈센트는 “툰드라를 타면 마음놓고 몰고 다닐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빅3는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문제는 디트로이트가 그 경고에 귀기울이느냐의 여부다.

Keith Naughton 디트로이트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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