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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의 기대<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강없는 정당>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정계의 분위기는 자못 어수선한 것 같다. 공천을 에워싼 여당내의 계열간 암투가 차츰 노현되는가 하면, 통합이다 연합이다 하여 야당 진영의 귀추 또한 그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사정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정계 동향 속에서도 뚜렷한 하나의 한국적 특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공천의 여부든, 통합이나 연합의 가부든, 혹은 파벌간의 시비든간에, 그 기준이 정책상의 이견 같은 대강에 유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파벌과 여·야의 이합이 뚜렷한 정견상의 차이에 연유된 것이라면 그것을 목하여 정계의 판도 변경이라고 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것은 무원칙한 사인적 취산에 불과한 것이라고 밖에 평가할 길이 없을 것이다.
지연 혈연 학벌 등에 그 근원을 갖는 친소 관계가 정계의 분포도를 형성하고, 자금 동원 능력이 정계의 영도적 지위를 판가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전근대적인 정치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치 집단이 어떤 직역이나 계층의 이해 관계를 대표하는 것이 못될 경우라도, 적어도 당면한 내정이나 외교상의 정책적인 주장은 분명한 것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것이 없는 탓으로 여·야의 한계도 확실치가 않고, 파벌의 존재도 그 존립 근거가 박약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자금의 조달만 하더라도 그 원천은 여·야간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당원에 의한 당비제는 물론 아니고 정강 정책을 내걸고 긁어모은 대중의 성금은 더군다나 아니다. 그 거개가 대자본과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연줄의 강약에 따라 당내의 비중과 공천의 여부가 좌우된다면 이와 같은 정당을 대중 속에 뿌리박은 정당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당과 당내 분파와 정치 자금이 이와 같은 사정에 있다면 정당의 조직력이라는 것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념을 같이 하는 문자 그대로의 조직적 집단이 될 수 없음은 물론, 그 조직이 지니는 투쟁력이나 투쟁의 목표도 그 향방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비방과 중상을 위주로 하는 비민주적 단체가 되기 일쑤이며. 돈푼의 다과에 따라 조직내부의 향배가 결정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이 숨길 수 없는 한국 정당의 내부 사정이고 그 성격이라면, 국민은 그것을 개탄하기에 앞서 그것을 민주적인 형태와 성격의 것으로 개선시킬 의무가 있다. 이것이 선거의 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명확한 정책「프로그램」을>
이와 같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국민 각자의 정책적인 평가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 신년사를 장식한 정계 요인들의 담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모두가 추상적인 개념상의 논의에 그치고 있다. 근대화니 대중 경제이니 해보았자 기실 무엇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은 것이다. 또는 대일 대월 대미 정책을 운위하지만, 현안의 문제와 해결하여야할 문제를 명확하게 제기한 의견을 찾아볼 수 가 없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물가와 세금과 치안과 국방과 통일에 걸치는 국민 생활과 국가 존립에 관계되는 대소사에 걸친 어떠한 보장과 약속도, 정계인들은 구체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고, 다만 안정과 질서와 앞날만을 고창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의 정강 정책이 이토록 막연하고 이토록 우원한 예가 있었던가. 국민은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자상한 정책상의 「프로그램」을 알고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행정부의 실무자를 「브리핑」 모양 부분적인 분야별의 현황 설명과 통계 숫자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알고싶어 하는 것은 어떠한 목적적 연관과 어떠한 유기적 관련에서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두고 해결해 가는 것이 우리가 좇아야할 객관적 당위겠느냐 하는 것이다. 목적의 설정이 없는 정책이 있을 수 없듯이 유기적인 종합성이 결여된 정책도 정책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는 없다.
정치인이 참말로 민생을 걱정하고 이 민족의 앞날을 염려한다면 뚜렷하게 내세울 정견상의 가치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분파의 형성과 붕당적인 경쟁에 영일이 없다 보면 정강대신에 상호 질시와 모략만이 정치의 전부가 될 위험이 없지 않다. 그렇게 될 경우 정치는 이미 국민의 것이거나 국민을 위한 것 일 수는 없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역사에 남기게 되고 말 것이다.
한편 국민은 정치가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자기 스스로가 주권자임을 명심하여 정치를 방관하거나 백안시하는 퇴영을 버려야할 것이다. 정치를 바로 잡는 기본적이고도 절대적인 길은 국민 각자의 정치 의식의 향상에 있으며, 능동적인 정치 참여에 있다. 정치 집단의 횡포와 정치인의 독주가 있을 때 그것에 항거하고 그것을 광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다. 항거와 고발과 비판이 자취를 감추게 되면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사회의 공동체적 운영은 바랄 수 없게되고 말 것이다. 새 해의 문턱에 서서 서로가 이점에 거듭 다짐이 있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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