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드는 '연예산업 주식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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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장르나 세대별,작곡.작사가 및 레코드 회사별로 정리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기획사가 중심이 된 산업화'다. 따라서 주요 기획사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 새 지도를 그리는 방법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요 기획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차례에 걸쳐 먼저 싣는다. 우선 90년대 후반 이후 철저한 마케팅 전략과 가수 키우기를 통해 가요계를 장악하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형 기획사들에 대해 살펴본다.

이어 8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지켜온, 가요계의 허리와 같은 전통있는 중견 기획사들을 정리하고, 끝으로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어 나갈 역량 있는 독립 레이블과 젊은 기획사들을 만날 예정이다.

대중음악은 여러 주체들이 모여 만든다.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와 작사가, 음반 제작을 책임지는 프로듀서, 가수들을 관리하고 보조하는 매니저, 노래를 부르는 가수, 자본을 투자하고 총책임을 지는 제작자 등이 그 주체다. 한국에서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사업의 대상이 된 것은 70년대다.


이후 대략 10년 주기로 어떤 주체가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대중음악계는 변해왔다.

우선 70년대에는 몇 사람의 대형 가수를 전속으로 하고 있는 레코드사가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했다. 지구.오아시스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80년대에는 무게 중심이 매니저로 넘어간다. 가수들을 관리 혹은 보조하던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이 레코드 회사를 설립해 큰 힘을 행사하는 경우로, 지금도 계속 성장하면서 업계 정상을 다투고 있는 도레미.예당 등이 이에 해당한다.

*** 상업적 감각과 자본 결합

90년대 이후에는 시장의 흐름을 간파하는 상업적 감각이 있는 프로듀서와 매니지먼트.자본의 힘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기획사들이 등장해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대표 김경욱) 가 대표적인 경우다. 가수 출신 프로듀서 이수만(50) 이사가 주축이 된 SM은 한국 시장에서 10대가 갖는 힘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H.O.T.을 필두로 연달아 히트 기획 가수를 내놓는데 성공했다.

특히 SM은 거대 자본의 필요성을 인식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먼저 기업을 공개(코스닥 등록) 했다. 시장에서 투자자금을 끌어모으려는 시도였다.강타.문희준.보아와 그룹 신화.S.E.S.등이 이 회사 소속이며,장나라.다나.밀크 등의 신인 가수도 이 회사가 발굴해 키웠다.

*** SM.사이더스 대표주자

SM이 자체 성장을 통해 기업을 공개한 사례라면 경쟁 기업인 사이더스(대표 차승재) 는 IT.영화 등 전혀 다른 영역의 세력이 가요 전문가들과 자본.기획력 등 힘을 합친 경우다.

코스닥 등록 IT기업 로커스가 돈과 경영 노하우를 대고,영화사 우노필름과 가요 기획자 출신인 정해익(36) 이사 등이 결합한 것.

H.O.T.이후 최고 인기 그룹으로 자리잡은 god와 차태현.장혁.진, 신인 여성 그룹 luv 등이 이 회사 소속이며, 토니 안 등 H.O.T.에서 탈퇴한 멤버들이 새롭게 결성한 그룹 jtl는 지주회사인 로커스 홀딩스 산하 계열사 예전미디어에 속해 있다.

사이더스의 최대 강점은 정상의 영화 제작.배급사(시네마서비스) 가 계열사고, 수많은 배우.탤런트들도 거느리고 있는 이점을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요계에서 뮤직비디오가 갈수록 중요해지고,영화와 가요를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이 늘어나는 경향도 이런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SM과 사이더스의 강점은 이것뿐 아니다. 둘다 음반 배급사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어 유통망에서도 갈수록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히트 기획가수 잇따라 내놔

이외에 지난해 신인 그룹 투야를 내놓고 가요계에 도전한 에이스타스(대표 백남수) 도 영화(신작 '라이터를 켜라') 제작과 스타 매니지먼트를 병행하면서 사이더스와 유사한 체제를 갖춰갈 추세다. 그밖에 많은 기획사들이 인수와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불리며 대형화를 꾀하고 있다.

이런 대형 기획사들의 특기는 공개적인 캐스팅과 스타 육성, 시장을 분석한 전략에 따른 음반 제작과 마케팅을 통한 '스타 만들기'다.

걸출한 스타가 존재하고 그를 보조하기 위해 회사가 굴러가는 기존 시스템과 달리 거꾸로 스타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존재하는 셈이다. 90년대 이후 가요 시장을 휩쓴 대형 그룹들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졌다.

대형 기획사들의 이같은 '스타 메이킹 시스템'을 보는 눈은 다양하다. 한류(韓流) 열풍의 근원지가 H.O.T.라는 사실이 상징하듯 이들이 대중문화 산업의 확대와 선진화에 기여한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반면, 10대.댄스.TV 위주의 상업적 마케팅이 대중음악을 망친다는 비판도 엄연하다.

양측의 시각이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만큼 대중음악은 물론 대중문화 산업의 발전이라는 두가지 과제가 양립할 수 있도록 관련 주체들이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상업성 치중" 문제점 지적

대중음악 비평가 송기철(33) 씨는 "대형 기획사들이 더욱 늘어나고 성장하는 것은 대세다. 문제는 미디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판매량 위주의 음반을 제작하는 데 치중한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상업적 음반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성 높은 음반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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