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대북 협상 성공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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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북한 핵위기와 관련된 최근 미국의 논평들은 몇몇 사안에 사로잡혀서 그에 대한 우려만 늘어놓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사안에는 한국 대선 당시 미국 고위 관리들이 북한공격을 적극 검토해 한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거나, 이 때문에 주변국은 "미국이 외교적 해결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들이 포함된다.

미 국방부 관리들이 지난해 비상 군사계획을 재검토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긴 사실을 시인한 만큼, 모든 정책 대안을 따져보지 않는다면 엄청난 실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국의 책임있는 지도자가 그같은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한국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주한미군이 동맹국에 비용과 위험은 떠맡기면서, 동맹국 정부의 지지도 없이 군사행동을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제네바합의수정 문제 돌출

외교적 해결책을 촉구하는 것도 '개별 사안에 사로잡혀'있기는 마찬가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확인해 왔다.

행정부 고위 관리들도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천명했을 뿐 아니라 "가능한 형식을 갖춰 북한에 안전보장을 약속할 의사가 있다"는 말도 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한다면, 에너지협력.농업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게' 가시적이고 다양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암시도 해왔다.

본격적인 대북 협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물밑에서는 협상을 위한 사전 포석이 한창 진행 중이다. 따라서 보다 주목해야 될 요소는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돌출할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이다.

협상의 목표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를 수정하는 데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포괄적 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인지가 첫번째 문제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제네바 합의를 수정만 해서는 '핵무기 개발은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라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

북핵 문제는 무엇보다 동북아 안보에 대한 위협이다. 주변국 모두 이 문제 해결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외교적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협정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같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새로운 협상으로 제네바 합의가 갖고 있는 분명한 결함을 해소하려 한다면 '적절한 검증장치 마련'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김정일은 레닌과 마찬가지로 '파이껍질처럼 합의는 깨라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이 아무런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사찰방법을 찾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향상된 검증체제를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디서 우라늄을 농축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무기사찰을 했던 유엔 특별위원회(UNSCOM)나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의 경험에 비춰볼 때 기만적인 정권을 상대로 벌이는 국제사찰의 한계는 분명하다. 어려움에 맞서려면 첨단기술뿐 아니라 정치적인 정교함도 요구된다.

미국과 북한의 주변국가들도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일련의 유인책과 압력수단들을 개발해야 한다. 주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대응자세에는 전술적 차이가 있다. 주변국들은 협상테이블에 북한에 호의적인 유인책들을 내놓는 데 몰두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 부시 행정부는 북한 고립과 제재에 치우치고 있다.

*** 압력·유인책 함께 보였으면

몇몇 사람들은 "공산주의 정권을 상대로 압력을 넣어봐야 전혀 소용없다"고 주장하지만 김정일이 지난해 북한 해군의 서해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일본인 납치문제에도 역시 그랬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의 사과는 선의의 표현이든, 현실을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든 북한이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였다. 북한으로선 지금 고자세로 나올 처지가 아닌 것이다.

'주체사상'이라는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북한 민중의 생존은 여전히 주변국들의 호의에 의지하고 있다. 주변국들은 북한 민중을 위해 지원하며, 북한 정권의 생존이나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간접 지원하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대북 협상은 '협력하면 상당한 혜택을 주되, 그렇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돼야 한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美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정리=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