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이슈] 확산되는 직장내 로또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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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최근 로또 등 각종 복권이 쏟아지면서 직장 내에서도 복권 신드롬이 몰아치고 있다. 특히 국내 복권 사상 최고액인 65억원을 챙긴 당첨자까지 탄생하면서 그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광고 카피처럼 '나도 단 한번에 인생 역전을 해보겠다'며 벼르는 샐러리맨들이 급증하면서다.

◇새로운 관심사, 복권=직장 동료끼리 한꺼번에 여러 장의 복권을 산 뒤 이익금을 나눠 갖는 이른바 '복권계'는 이제 흔한 모임이 됐다. 광고대행사인 W사의 朴모(32)대리 등 직장 동료 세명도 최근 이른바 '로또 펀드'를 만들었다. 매주 세사람이 1만원 정도씩 갹출해 복권을 공동명의로 산 뒤 함께 숫자를 골라 베팅하는 형식이다.朴대리는 "로또 숫자를 정하기 위해 제법 진지한 토론과 분석도 한다"며 "그러나 복권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같은 부서 직원끼리 친목을 다지는 활동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복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각양각색. 인터넷 회사인 I사의 李모(34)과장은 "로또 당첨 확률이 가장 높은 번호를 제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는 것이 일과가 됐다"며 "시간이 나면 미주.유럽 등지의 로또 관련 통계 자료를 분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의류 회사에 다니는 李모(27.여)씨는 복권발급 대행사인 국민은행에서 'OMR 카드'용지를 한뭉치 가져다가 사무실에 비치해 두고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숫자를 고른다. OMR 용지는 얼마든지 가져다가 써도 상관이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 지금까지 1만원짜리 복권 당첨 경험이 있다는 李씨는 "친구 생일을 조합해 보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간판을 보고 적기도 한다"고 자신만의 '숫자 고르기 비결'을 알려줬다.

로또번호를 쉽게 골라주는 각종 기념품들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로또 복권 홍보를 대행했던 코콤포터노벨리의 신자은씨는 "여섯개의 숫자를 선정해주는 조그만 열쇠고리를 별 생각없이 들고 다녔는데 주변의 많은 남자 직장인들이 하도 달라고 애원해 고민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에서 전날 밤 꾼 꿈과 해몽이 중요한 '화제'로 오르내리는 것도 복권 신드롬이 몰고온 새로운 풍속도.

인터넷 업체 A사에 근무하는 洪모(30)대리는 얼마 전 날아오는 공을 잡는 꿈을 꾼 뒤 혹시 '대박이 터질' 징조가 아닐까 해서 복권을 산 뒤 직장동료들에게 꿈이야기를 털어놨다. 洪대리는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평범한 꿈이라고 넘겼을 텐데 실제로 좋은 꿈을 꾼 사람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는 것을 보니 보통 꿈처럼 생각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A백화점 홍보팀의 막내 사원인 박모씨는 차장.과장 등 부서 내 간부들을 위해 로또 구매 총괄직을 자청했다. 朴씨는 "회사 선배들이 적어주는 번호들을 메모지에 적어놨다가 내가 복권을 구입할 때 함께 사준다"며 "영수증 용지를 받아드는 표정들이 정말 진지하다"고 전했다. 연하장에 복권을 동봉하거나 생일 등에 선물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시너지 커뮤니케이션에 근무하는 조윤정씨는 "얼마 전 거래처와 친구들이 보낸 연하장에서 주택복권 등 즉시복권이 적지 않게 들어왔다"며 "요즘 복권에 관심이 많아 정말 반가웠다"고 말했다.

◇복권은 이제 생활의 일부=도박처럼 사행 행위 정도로 치부되던 복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너그러워졌다. 이같은 의식 변화는 최근 설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채용정보 사이트 파워잡이 최근 직장인 8백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9%가 '복권 대박'을 꿈꾼다고 조사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이달 중순까지 진행한 '로또복권! 인생역전인가 사행심 조장인가'라는 주제로 한 앙케트에서도 도박이라는 의견(약 30%)보다는 '일종의 레저'(약 40%)라는 시각이 더 많았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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