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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규제 여전히 많다] 下. 농지-소유와 이용 분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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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의 자산가치는 누가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소유를 규제해 농지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투기가 염려된다면 자본이득에 대한 환수장치를 강화해 해결해야지 투기 억제수단으로 경자유전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설광언 연구조정실장은 농지를 소유 규제에서 이용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경자유전(耕者有田)에서 경자용전(耕者用田)으로=정부는 1950년 소작농에 대한 지주들의 착취가 극심해지자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소작농지를 정부가 사들여 자작농가에 분배했다. 그 결과 해방 직후인 45년 35%에 불과했던 자작농지 비율이 51년 92%로 높아졌다.

하지만 경자유전 정신은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 땅을 팔고 도시로 떠나거나 도시의 자녀들이 농촌의 부모에게서 농지를 물려받는 경우가 늘면서 순수 자작농의 비율은 지난해 전체농가의 27%에 불과할 정도로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유 규제를 고수하는 것은 농지거래비용만 높여 농지거래를 침체시키고 영농규모화 등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오히려 막는다는 지적이다. 농업생산성을 높이려면 임대차 영농이 갈수록 늘어나는 점을 감안,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KDI 薛실장은 "농지 임대를 하면 세제상의 불이익을 주는 현행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며 "영세한 노령농가가 농지 이용권을 영농법인이나 대규모 전업농에게 몰아주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농업외소득 늘리는 쪽으로 활용해야=프랑스 국립통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때 호텔.콘도에서 머무는 사람은 전체의 5.4%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자치단체나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민박시설(16.4%)과 캠프장(15.5%), 지방자치단체가 자금을 지원하는 바캉스촌(4.5%)에서 '바캉스'를 즐긴다. 도시민들이 농촌지역에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농지에 이같은 시설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물론 건설비의 30%를 보조하는 등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독일도 1976년 농지정비법을 개정,단순한 농산물 생산의 터전에서 지역개발을 촉진하는 쪽으로 농지를 활용하고 있다.

농지에 골프장.스키장.승마장.체육시설 등 대규모 레저단지와 산책로.자전거도로.승마로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 단 개발의 기본조건으로 환경과 자연경관에 대한 보호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토연구원 박헌주 연구위원은 "농촌인구의 노령화 및 주5일 근무제 등 사회적 여건의 변화를 고려해 꼭 필요한 우량농지를 제외한 농지는 농업외소득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난개발 막는 체계적 계획 필요=정부는 94년 준농림지역의 용도전용 규제를 상당히 풀었다. 그 결과 일부지역에선 러브호텔.'나홀로'아파트 등으로 상징되는 난개발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농지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난개발을 막는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지를 개발하더라도 도시지역 재개발처럼 농민들과 지자체가 중심이 돼 자율적인 개발계획을 세워 농지전용이 질서있게 이뤄지도록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지전용권 등 관련 규제를 농림부에서 지자체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부원장은 "지자체는 농지규제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이 없으므로 난개발에 대한 책임도 없다"며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되 규제완화에 따른 책임을 지자체와 주민들이 함께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농림부의 변(辯)=농림부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곡물을 1백% 자급하는 선진국은 물론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도 쌀의 자급을 위해 엄격하게 농지를 보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주(州)정부 주도로 농업지역을 지정하는 등 농지를 보전하고 있으며 일본도 해마다 전체 논의 36%인 1백만㏊를 보조금을 주면서 휴경(休耕)을 유도, 농지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농지의 소유와 거래를 규제하는 것에 대해 농림부는 해방 이후 농지개혁으로 어렵게 이룩한 자작농 체제가 무너지고 많은 농민이 소작농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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