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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대장에 없는 공장 200개, 한센인·부품업체 무법 공생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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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울산시 북구 시례동 한센인 마을에 무허가 공장 200여 개가 들어서 있다. 마을 일대는 개발제한구역어서 공장 설립이 불가능하다. 1960년대 정착한 한센인들은 공장 부지 임대료를 받아 생계를 잇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일 오후 6시10분 울산시 북구 시례동 성혜마을. 울산의 유일한 한센인 집단 거주지역(17만㎡)이다. 마을 대부분의 공간은 300~500㎡ 크기의 소규모 공장 200여 개가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와 조선소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영세업체다. 해가 저물자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크와 모자, 장갑으로 얼굴과 몸을 두른 한센인이다. 주민 정모(64)씨는 “마을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이라 공장이 들어설 수 없다”며 “부자도시로 알려진 울산의 어두운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곳이 한센인 정착지가 된 것은 1960년대다. 정부가 추진한 한센인 집단이주 시책에 따라 조성된 전국 91개 마을 가운데 하나다. 상당수 한센인 마을은 인구가 줄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한센인들은 이곳에서 돼지·닭 등 가축을 기르며 생계를 이었다. 정부는 축사 건축 비용 등을 지원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가축 전염병과 축산업 불황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이 틈을 타 외지인들이 찾아와 ‘축사 자리에 작은 공장을 짓게 해주면 임대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한센인들은 토지 사용권을 갖고 있었다. 축산업 불황으로 고민하던 주민들에겐 솔깃한 이야기였다. 이후 마을은 공장지대로 변했다. 30여 년간 200여 개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울산시민들은 이곳을 ‘공단’으로 불렀다.

 그러나 마을 일대는 73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공장설립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행정기관은 불법행위를 눈감아줬다. 무허가 공단이 조성될 때까지 당국은 아무런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울산시 관계자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데 따른 소외감을 갖고 있던 한센인 반발이 두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은 건축물 대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지금까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성혜마을 주민 173명 가운데 한센인은 63명이다. 한센인은 거의 65세 이상 고령자이며 기초생활수급자다. 이들은 공장 임대료를 받고 있어 생계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장 근로자 수나 매출액 등 공장 현황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울산 북구청은 여러 차례 실태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울산북구청 안희수 지역경제과장은 “수십 년 동안 방치하다 보니 조사를 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공장주들은 주변에 비해 싼 가격에 부지를 빌려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혜마을 홍정길 통장은 “한센인들은 과거에 강제로 격리된 아픔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성혜마을의 한 공장 업주는 “마을주민들과 잘 어울려 살고 있는데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뭐냐”며 불쾌해했다.

 울산시 북구청 등은 성혜마을 무허가 공단의 양성화 방안을 검토했었다. 정부나 지자체 등의 예산 지원으로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손을 놓은 상태다.

 경기도의 경우 한센인 집단 거주지인 포천시 장자마을 등의 무허가공단 양성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4년까지 인근에 새로 조성하는 산업단지로 무허가 염색공장 140여 개를 옮길 계획이다. 이 산업단지는 경기도와 정부가 예산 1000여억원을 분담해 조성 중이다.

글=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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