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야구의 심판 (하)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선 미국의 엄정한 판정을 배우기 위한 일환으로 미국에 심판 방문을 요청했고, 미국 측은 마이너리그 3A의 심판이던 마이클 디뮤로 (99년 메이저리그 심판으로 승격)를 일본으로 보냈다.

디뮤로는 97년 당시 29세의 나이로 일본 센트럴리그에서 1년 동안 심판을 맡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루 디뮤로도 메이저리그 심판 출신이다.

디뮤로 심판이 일본에서 본 가장 큰 문제점은 포수의 위장동작과 투수의 보크성 동작이었다.

일본 포수들은 홈 플레이트 근처로 오는 볼을 포구하는 순간 미트를 스트라이크쪽으로 교묘히 움직였다가 그것을 볼 판정하면 주저앉거나 실망한 자세를 취한다. 던진 투수도 마찬가지다.일본에서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미국에서는 심판에게 모욕 행위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선 투수의 견제동작이 자유로워 투구 중 정지동작과 이중킥킹을 허용하고 있다.

디뮤로 주심은 시범경기에서 야쿠르트 투수에게 보크선언을 했다가 당시 야쿠르트 사령탑이던 노무라 감독에게 심한 욕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않은 일본 첫 외국인 심판은 5월 17일 한신:야쿠르트전에선 폭언을 한 한신 요시다 감독에게 퇴장명령을 내렸다.

요시다 감독의 경우 전례를 비추어 볼 땐 결코 심한 항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디뮤로 주심은 심판과 감독 중 누가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1시합동안 꾸준한 존을 고수했으며, 좌우로 극히 좁은 일본의 존에 비해 좌우를 넓게 잡았다.

이 파란 눈의 재판관은 미국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보았다.일본 측이 미국식을 공부하기 위해 일부러 방문요청을 한 것이므로 일본 리그라 해서 일본식으로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당시 센트럴리그의 대표 가와시마 회장도 일본의 심판들은 대체로 말하거나 행동하길 꺼려서 사람들에게 불신 받고 있는데, 디뮤로는 지금까지의 일본 심판이 지나치고있던 보크와 퇴장처분을 제대로 실행하고있다며 그를 옹호했다.

하지만 일본 스타일과는 다른 그의 판정에 시비가 끊이지않았다.외국인 심판 도입이란 발상 자체는 좋았지만 너무 급하게 정해졌고, 단 1명만이 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집단 따돌림에 부딪칠 가능성이 컸다.

결국 디뮤로는 지지를 받지못했다.곧바로 퇴장시킨다는 원칙을 고수하면 감독이나 선수의 항의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선수와 코칭스탭은 물론 매스컴에서도 디뮤로를 성가신 존재로 취급했다.

디뮤로가 약 2개월만에 일본을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6월 5일 경기라 할 수 있다.

당시 스트라이크존에 불만을 호소한 주니치 타자 다이호에게 퇴장명령을 내리자 다이호가 디뮤로 주심의 가슴을 밀쳤고, 주니치 선수들과 코칭스탭이 뛰쳐나와 심판을 협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도쿄의 한 신문이 ‘야구장에선 감독이 곧 법이며 잘하지 못한 선수를 때릴 권한도 있다. 심판은 판정관일 뿐이며, 야구경기 최고의 책임자는 감독이다’라 쓴 평이 시카고 트리뷴지에 개재되어 미국 내에서 일본리그에 대해 경악과 반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2002년 스트라이크존을 룰북대로 가슴 부분까지 원상복구한 일본야구 심판진들은 2003년부터는 곧게 오는 높은 직구는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되, 같은 높이로 오는 변화구는 볼로 부를 예정이라 한다.

스트라이크 존은 포수 미트를 보고 판별하는 게 아니라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때 판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커브같이 상하낙차가 큰 변화구는 정강이에서 잡더라도 존을 통과한 후 떨어졌다면 손을 올라가는 게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센트럴리그 심판부장은 포수 미트와 반대쪽으로 가는 공은 프로답지 못한 공이라 해서 볼을 선언할 것이라 해 볼 판정에 심판의 주관이 개입될 우려를 낳고 있다.어떤 공이든 존을 통과했으면 스트라이크로 부르겠다는 퍼시픽리그 심판부장의 생각과는 분명히 반대되는 견해다.

야구가 일본만의 스포츠라면 모르겠지만 앞으로 올림픽,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등 국제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일본이 최근 국제대회에서 부진했던 이유로는 프로 올스타급 멤버들이 출전하지 않았다는 것도 있지만, 스트라이크 존이 국제 기준과 차이가 컸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문현부 명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