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순 교수의 과학에세이] 갈릴레오는 교수 벤처 선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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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근대 역학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위대한 과학자다. 오늘날 갈릴레오 하면 낙하의 법칙이나 관성의 법칙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런 역학 분야에서의 공헌이 당시에 갈릴레오를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그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 즉 '메디치의 별'이었다.

갈릴레오는 1589년 피사대에서 처음 자리를 잡았으나 1592년 파도바대로 옮겼다.

갈릴레오가 살던 시기에 수학.천문학.광학.역학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철학이나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에 비해 무척 낮은 대우를 받았다. 대학 수학 교수들이 받던 봉급은 철학자의 6분의 1에서 8분의 1에 불과했다.

부양가족이 많았던 갈릴레오는 대학 교수의 봉급만으로는 살기 어려워 다양한 부수입원을 찾았다.1597년 그가 기하와 군사적 목적의 컴퍼스라는 최초의 상업적인 과학 도구를 개발한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갈릴레오는 오늘날 대학 교수 벤처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갈릴레오는 자신의 과학 활동을 보장해줄 후견자를 찾는 데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1606년 갈릴레오는 궁정 수학자가 되려는 생각에 자신이 개발한 컴퍼스의 설명서인 소책자를 장래 토스카나의 대공이 될 메디치 가의 돈 코시모에게 헌정했다. 심지어 갈릴레오는 페르디난도 대공의 별점을 봐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궁정학자가 되기를 갈망했으나 1609년까지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파도바대에서 어려운 교수 생활을 계속했다.

갈릴레오가 낙하법칙을 생각해 내고 진공 중에서는 모든 물체가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낸 것은 파도바대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과학에서의 이런 성공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사회적인 지위 상승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갈릴레오의 성공시대는 하늘로부터 찾아왔다. 1609년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을 이용해서 목성 주위를 도는 4개의 위성을 발견했다.

이 때 갈릴레오는 메디치 가로부터 후원을 얻어낼 목적으로 목성의 4개의 행성을 '메디치의 별'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천문학적 업적을 메디치 가의 신화와 연결시키는 재치를 발휘했다.

갈릴레오의 의도는 정확히 맞아 떨어져 1610년 갈릴레오는 토스카나 대공의 수석 수학자이자 철학자가 되어 파도바대를 떠나 피렌체의 메디치 궁정으로 가게 되었다. 이리하여 갈릴레오는 가난한 수학 교수에서 궁정인 수준으로 지위가 상승했고 과학자로서도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임경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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