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웃기려면^^ 백번은 울지요 ㅠㅠ

중앙일보

입력

다른 장르의 연예인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 이번에도 그랬다. KBS 개그 콘서트 팀이 지난 22일 '공공의 적' 시사회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우석 감독과 '코미디'를 주제로 대화를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개그 콘서트팀은 평일 낮 시간은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데드 라인(기사 마감 시간) 이 임박한 날 밤 10시, 겨우 시간을 잡았다.


신작 개봉을 앞두고 초조와 불안,기대가 뒤섞여 심란했을 강감독은 우리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TV에서 코미디하는 젊은 친구들과 토론하면 재미있겠다"면서. '심야의 삼겹살 토크'는 이렇게 밤 10시부터 어느 허름한 소주집에서 벌여졌다. 개그 콘서트팀에는 장덕균 작가를 비롯해 이병진.김대희.이태식.김준호씨가 참석했다.

강우석=아니 뭐 그리 바빠요? 다들 따로 부업해요?

개그 콘서트=부업요? 그런 거라도 있으면 좋게요. 우린 공무원 같은 생활을 해요. 매일 정시에 출근해서 연습하는 겁니다. 하루라도 거르면 서로 호흡을 맞추는데 애를 먹기때문이죠. 토요일 하루만 쉬어요.

강우석=그렇게 바쁘면 돈을 많이 벌겠네요.

개그=계속 모르시는 말씀만 하시네요. 방송 종사자들 중 개그맨(개그우먼도 포함) 의 개런티가 가장 낮아요.

강우석=으음, 생각보다 열악하네요. 그건 그렇고 '공공의 적' 어떻게 봤어요□

개그(이태식) =설경구.이성재씨 연기가 박중훈, 안성기씨와 오버 랩되더라구요. 감독님의 '투캅스'를 너무 재미있게 본 탓이기도 하고 이번 영화가 '투캅스'와 비슷한 코드이기 때문이기도 해서 그럴 거에요. 이번엔 특히 조연들의 연기가 아주 좋았어요.

강우석=난 코미디영화가 전공이라 '개그 콘서트'도 즐겨 봐요. 특히 다들 애드립을 아주 잘하는 것 같아요. 객석이 '썰렁'하다 싶을 때 즉석에서 대본에 없는 대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실력들이 뛰어난데, 비결이 뭐예요?

개그=경험과 감(感) 이죠, 뭐. 애드립이라고 다 통하는 건 아니에요. 녹화이기 때문에 실패한 애드립은 편집 과정에서 들어내죠. 또 대본에 애드립인 것처럼 미리 설정해 놓는 경우도 있고요.

강우석=영화는 객석이 없는 상황에서 연기를 하기 때문에 나중에 극장에서 봤을 때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할 때가 많지요. TV 개그는 즉석에서 관객 반응을 알 수 있어 좋겠어요.

개그=그런 잇점은 있죠. 그러나 관객없이 비공개로 녹화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땐 현장에 있는 카메라맨이나 스태프들 반응을 보고 예측을 하죠.

강우석=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에요.'공공의 적'찍으면서도 몇 장면은 카메라 기사나 심지어 감독인 내가 너무 웃어제치는 바람에 NG가 나기도 했죠.

개그=우리도 언젠간 영화를 하고 싶어요.

강우석=코미디 영화에 개그맨을 출연시키기는 어려워요. 개그맨이 나온다고 하면 관객들은 이미 웃음에 대해 기대치가 높아져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충족시키기가 어렵거든요. 안성기씨나 설경구씨처럼 진지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웃겼을 때 코미디의 효과가 극대화되죠.

개그='개그 콘서트'를 영화로 만들 순 없을까요?

강우석=힘들 것 같은데요. 개그 콘서트를 1백분짜리 드라마로 만들 수 있겠어요?

개그=옴니버스로 만들면 되잖아요?.

강우석=옴니버스가 흥행이 된 경우는 없었어요. 이렇게 할 순 있겠죠. 여러분들이 프로를 만드는 과정을 드라마화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방송국에 출근해서 팀원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서로 설전을 벌이고 PD와 다투고 하는 등등의 막후 에피소들을 드라마로 만드는 거죠.

개그(이태식) =그래도 저희들은 언젠가 개그콘서트의 코너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꿈을 꿔요.

강우석=난 '개그 콘서트'가 사회성을 좀 담았으면 좋겠어요. 이 자리에 계신 장 작가의 히트작이었던 '회장님 회장님'같은 코너를 요즘은 찾기 어려워 아쉬워요.

개그(장덕균) =저도 정치 코미디를 제대로 하고 싶어요. 그러나 요즘 시청자들은 짤막하고 단발적인 웃음을 선호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어요. 사실 '개그 콘서트'는 10년전에 우리가 만든 거에요.그런데 그 때는 반응이 시원찮았거든요. 코미디에 대한 대중의 요구도 시절에 따라 변하는 것 같아요.

강우석=도대체 코미디란 뭘까요?

개그(이병진) =난 '자장면과 물'같은 거라 생각해요.중국집 가서 가장 많이 주문하는 게 뭐예요? 자장면이죠.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항상 있는 게 뭐예요? 물이죠.그런 일상적인 편안함, 항상 곁에 있음 같은 거죠.

가수들 콘서트에 자주 초청받는데 노래 부르는 중간에 가수들이 쉴 때 우리는 객석을 웃기면서 편안하게 해 주죠. 바로 그런 거에요.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코미디가 인기라는 건 코미디가 삶의 청량수, 즉 생명수라는 말이 아닐까요.(일동) 끄덕 끄덕

강우석=난 채플린을 아주 좋아해요. 앞으로 스필버그는 잊혀질 지 몰라도 채플린은 2백년, 3백년이 지나도 기억될 거에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왜 이리 고독한가, 왜 이리 힘들게 살고 있는가라고 느낄 때 만든 작품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고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사람치고 고독하거나 힘들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당신 한 번 웃길려면 난 백번을 운다"는 거죠. 그 고독감은 아무도 모를 것에요. 코미디는 속성상 눈물과 한 쌍이에요.'공공의 적'에서는 공포와 웃음을 붙여봤지만 좀 더 성숙하면 눈물과 웃음을 붙이고 싶어요.

개그=어둠이 깊었네요.'건강한 웃음'을 위해 우리 건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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