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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장진호 전투, 미·중 이번엔 ‘스크린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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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50년 11월 26일부터 17일간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미군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 다. 당시 장진호 인근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 미 해병사단. [사진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펑샤오강

중국이 6·25 전쟁 당시 미군과 맞붙었던 ‘장진호(長津湖) 전투’를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한다. 미 할리우드에서 이미 같은 소재의 영화가 추진 중이어서 서로 다른 ‘전쟁의 기억’이 충돌하게 됐다. G2로 불리며 외교·경제·군사 각 분야에서 파워 게임을 하는 미·중의 기싸움이 스크린에서도 재현될 조짐이다.

19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최근 막 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정협)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바이(八一)영화제작소 황훙(黃宏) 소장이 장진호 전투를 영화화할 계획을 밝혔다. 황 소장은 “장진호 전투는 중국이 서방 군대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사건”이라며 “이 전투에 대한 중국의 독자적인 시각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계곡에서 미군과 중공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다. 미 해병 1만5000명이 12만 명 규모의 중공군에 포위돼 17일간 혹한 속에서 치열하게 싸워 가까스로 철수했다. 황 소장은 “기록으로 보면 해방군은 7일 밤낮 견고하게 진지를 지켜냈다. 전사 시체들 모두가 총을 들고 적이 있는 방향으로 눈을 부라린 채 얼어붙었다. 이 같은 사건이 주는 감동을 영화로 담겠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장진호 전투가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규모가 열 배 가까이 되는 중공군을 뚫고 흥남 철수 작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사상자도 미군이 수천 명(한국인 포함) 선인 데 비해 중공군은 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4년 제1 해병사단 방문 연설에서 “한국전 당시 적의 7개 사단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둬 해병대의 위대한 전통을 세웠다”며 공로를 기렸다. 당시 혹한기 전투경험을 되새기는 뜻에서 지난 2월 강원도에서 한·미 해병이 합동 혹한기 훈련을 하기도 했다.

 중국의 장진호 전투 영화 제작은 미국에서 같은 소재의 영화가 추진 중인 것과 관련이 있다.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거장으로 꼽히는 에릭 브레빅이 감독하는 영화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이다. 2010년 브레빅 감독은 초신(Chosin·‘長津’의 일본식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 전투 소재 영화 계획을 밝히면서 “비인간적 상황에서 숭엄한 인간미를 보여준 군인들에게 정당한 이야기를 선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아카데미상 수상 작가 프랭크 피어슨이 각본을 맡았으나 그가 지난해 7월 87세로 타계하면서 촬영이 지연되고 있다.

 중국 측 감독은 ‘대지진’(2010), ‘일구사이’(2012) 등을 연출한 거장 펑샤오강(馮小剛)이다. 펑 감독은 1948년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민당 간에 벌어졌던 문하전투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 ‘집결호’(2007)를 연출한 바 있다. 그는 장진호 전투 영화와 관련해 “지금은 참전했던 노병들이 살아 있지만 나중에는 증언자들조차 사라질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 국제사업담당 한상희 팀장은 “중국은 영화 ‘건국대업’(2009)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해방군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을 무찌르고 공산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을 그리는 등 프로파간다 영화에 투자해 왔다”며 장진호 소재 영화도 그 연장선상으로 해석했다.

중국 영화시장의 급성장도 배경이다.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 수익은 170억7300만 위안(약 3조530억원)으로 전 해에 비해 30% 이상 증가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등 힘이 세진 중국이 자국의 시각을 세계화하는 데 관심을 돌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강혜란·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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