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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지닌 「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영하30도, 공기마저 얼어붙는 휴전선. 아무리 침착해지려고 애써도 턱이 떨려 이빨 부딪는 소리와 수족은 이미 내 명령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세찬 북풍에 우는 철조망. 앙상한 나무사이로는 얼어붙은 눈 조각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총을 치켜세우고 추위와 맞서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조국을 지키던 내 마음에 뜻하지 않게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서울발신으로 추측되는 어느 여성으로부터의 위문편지였다. 신분은 밝히지 않았으나 내용으로 보아 어느 여고에 재학중인 것 같았다. 추위에 얼어버린 육체를 이끌고 자유대한을 지킨다는 그 집념뿐인 내게 그 편지는 참으로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 편지가 닳아 해어질 때까지 주머니에 넣고 두고두고 꺼내 읽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는 눈 녹이는 봄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이렇듯 큰 위안을 주는 줄 알았다면 좀더 많은 편지를 썼을 걸 하는 후회감도 났다.
의무적으로 군대를 거쳐야하는 대한민국의 한 남자로서 흘러간 군대시절을 회상하며 위문편지가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해마다 겨울이 오고 추위가 질어지면 모든 후방국민에게 알리고 싶어진다.

<박해천·공무원·24세·서울서대문구전연동 9통5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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