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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의 손짓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어쩌마 번화가에서 잠깐 머뭇거리면 사람멀미에 현깃증이 난다. 그런 속에서도 상다리를 펴고 앉아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토정비결을 보아주는 행상들이다. 아니, 운명을 파는 주술가들이다. 그것도 이젠 세대교체가 되었다.
왕년엔 그래도 늙수그래한 노인들이 팔짱을 끼고 앉아 그 일을 벌이더니, 요즘엔 20대가 갓 넘었을 청년들도 남의 운수를 보아준다고 스르르 눈을 감는다. 가뜩이나 신산한 거리를 더욱 어설프게 만드는 풍경이다. 일말의 동정도 간다.
그러나 그것이 세태이다. 「토정비결」은 매양 졸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로 성업인가 보다. 얼핏 지나는 결에 물어도 그들의 수다스러움엔 신명이 나있다. 짐짓 긴장을 한 고객의 표정은 절로 우습다. 하지만 그 얼굴엔 장난기가 없다.
그러고 보니 또 세모가 가까워 졌다. 어느새 12월의 일력도 몇 장 남지 않았다. 지나가는 해는 그렇다 치고라도 새해에나 기대를 거는 것은 우리의 상정이다. 무엇에 기대를 건담. 사람들은 토정비결이나 보자는 심사일까?
그런 세모의 거리는 어딘지 어수선하다. 은종이가 나풀거리고, 한껏 「크리스머스」의 기분을 자극하는 장식들이 하나 들 날개를 펴지만 아직은 피안의 축제 같다. 오히려 구세군이 흔드는 자선남비의 종소리가 세모를 의식하기엔 한곁 실감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세모를 알리는 또 다른 전령사가 착착 도착하고 있다. 고개를 드는 물가의 손짓들. 이발료에, 목욕 값에, 또 무엇이 오르려나? 김 통위는 지난달의 통화량을 7백19억원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 같은 통화팽창은 경제성장률 10%에 대응하고도 물가의 상승을 자극하는 액수라고 한다. 그것은 재정안정선을 69억원이나 앞지른다. 시정인의 미신은 가두의 토정비결이 아닌, 바로 그 물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민의 심경으론 「물가하락의 괘」나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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