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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일자리는 따로국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4호 34면

#장면1. 이달 초 일본 신문의 서울특파원 송별회 자리에 참석했다. 4년간 이명박(MB) 정부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 본 그는 찬사일색이었다. ‘기업의 시대’를 이끈 대통령이라 치켜세웠다. 요지는 이랬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원화 약세를 유지했고, 대기업 수출을 늘려 성장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1년마다 바뀌는 총리와 엔고에 무대책이던 일본의 정치 리더십 부재를 빗댄 말이다. 특히 MB의 친기업 정책에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로 화답한 것은 배울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업인들이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아도 곧 대통령 사면을 받는 한국은 ‘기업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라는 우스갯말도 나왔다.

김태진 칼럼

 그러면서 한국의 치열한 경쟁사회가 화제로 등장했다. 영어 유치원부터 대입 전쟁, 취업 스펙 쌓기, 40~50대의 ‘명퇴’ 행렬 등이 거론됐다. 순간 그의 입에서 ‘일본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본 기자의 눈에도 한국 경제는 대단하지만 한국인은 경쟁과 효율성에 내몰리고 있는 게 보이는 모양이다.

 #장면2. 얼마 전 대기업 임원과 점심을 했다. 엔저로 도요타는 부활하는데 일본 전자업체는 어렵다는 게 화제였다. 2009년 도요타가 엔고로 적자를 냈지만 60세 정년을 고수한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소리도 나왔다. 그는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산업은 본질이 다르다. IT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 효율성을 위해서도 잘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키아·소니처럼 방심하면 적자 정도가 아니라 망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어 대화는 투자와 고용으로 옮겨갔다. ‘대기업이 고용에 인색하다’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시각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대규모 투자에 따른 직접 고용효과는 크지 않지만 간접적인 일자리 창출이 컸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MB 정부에서 대기업들은 해마다 ‘사상 최대 투자’를 큼지막하게 홍보했다. 이런 투자 덕분에 경제 성장률은 무난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투자가 고용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기업들이 발표한 투자금액은 국내·해외를 구분하지 않는다. 매년 투자액이 수십조원인 A그룹의 경우 70% 이상이 해외투자였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西安)에 첨단 반도체 공장 투자를 발표했다. 규모가 70억 달러(약 7조7000억원)로 해외 단일투자 규모론 사상 최대다. 현대제철은 충남 당진제철소 건설에 2012년까지 5년간 7조원을 투자했다. 역시 단군 이래 국내 최대 규모다. 그 사이 이 회사 정규직은 3000여 명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현대제철은 건설 일용 근로자까지 포함한 간접고용 효과가 1만 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현대차의 경우 2001년부터 10년간 국내 공장에서 늘어난 일자리 숫자는 2000개가 채 안 된다. 대신 해외 공장을 증설하면서 무려 2만 개 넘는 일자리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국내보다 해외에 눈을 돌린다. 까다로운 규제·장벽에다 노조세력, 환경운동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근 3~4년 동안 30대 그룹이 매년 100조원 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청년실업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90년대만 해도 ‘1조원 투자를 하면 1만 명 일자리 창출’이 가능했다. 2000년 이후 정보화·자동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투자가 곧 고용을 의미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대규모 투자가 자동화 설비에 집중되면 거꾸로 기존 일자리마저 위협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결론이다. 정답은 첨단 기업이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지만 그 길은 아직 요원하다.

 대기업들은 요즘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취임 한 달의 박근혜 정부에서 읽히는 메시지가 단호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달리 기업에 빚진 게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양쪽의 오해만 쌓여 가는 건 아닌지 서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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