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정부개혁 왜 머뭇거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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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에 비해 생산성과 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능력이나 의식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공조직이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다. 공조직의 속성이 원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경제의 활력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대한 공공부문과 독점국영기업 체제를 가진 나라가 경쟁력 강화와 경제개혁에 성공한 적이 없는 것이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한결같이 국영기업의 개혁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효율보다 형평 중시하는 조직

현 정부도 바로 이 때문에 지난 5년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최우선 국정개혁과제의 하나로 공공부문개혁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공조직은 속성상 성과보다는 과정, 효율보다는 형평을 중시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조직목표가 공익이라는 주관적인 것이 되다 보니 의사결정이 주로 정치적 고려에 의해 이뤄지고 조직이나 사람이나 경쟁과 퇴출의 압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을 두 사람이 하게 되고 같은 일을 해도 민간조직보다 돈과 시간이 더 들게 되어있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인과 관료가 공기업의 인사와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경영진을 능력과 전문성보다는 전관예우 또는 정치적 배려차원에서 임명해왔고 경영진의 임면이 경영성과나 임기와는 무관하게 이뤄졌다.

그 결과 누구도 주인의식을 갖고 책임경영을 하지 않게 되고 방만한 경영과 잘못된 결정이 공익과 정부방침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배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최근 민영화 원칙은 유지하되 민영화 이후에 경영 및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보장할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현 정부의 민영화 방안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방침은 민간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 경영이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있고, 정부에 의한 지금의 공기업 지배는 투명하고 책임성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의 공기업 지배가 민간보다 더 투명하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공기업 민영화가 바로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지배구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일부 민영화된 기업에 있었다는 경영상의 문제는 오히려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계속 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권당이 자체적으로 '개혁적 인사'를 선출해서 이들을 공기업 임원으로 취업시키겠다는 발상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공기업 개혁을 위해서는 민영화 외에 대안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일부에서 민영화 이후 공공성의 훼손을 우려하고 있으나 이는 얼마든지 제도와 정부규제에 의해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신.교육.의료.에너지.대중교통.방범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 이미 수많은 민간기업들이 정부규제의 틀 속에서 공익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전력.가스.철도산업의 구조개편 방안은 현 정부 이전부터 역대 정권이 대를 이어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추진해온 국정과제다.

필자도 일부 참여했지만 지난 십여년 동안 수많은 국내외 전문가와 정책담당자, 이해관계자들이 오직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도출한 결과물이다.

이들이 망산업의 특수성이나 기반사업의 공공성을 모르고 개편방안을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정부의 개편방안들은 지나치게 위험 회피적이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안들이다. 여기에 제동을 거는 것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인가.

*** 정부규제 속 공익적 기능을

무엇보다도 역설적인 것은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핵심 개혁과제였던 국유 기간산업의 구조개편과 공기업 개혁에 대해 개혁정부를 자임하는 차기 정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방만하고 비대한 공공부문을 개혁하고 슬림화하여 국가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구분해서 해야 할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부개혁이다. 정부개혁 없이 어떻게 개혁정부가 될 수 있겠는가.

金鍾奭(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