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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범죄유혹에 쉽게 빠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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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는 3월 불법체류자 자진 출국 시한을 앞두고 국내 범죄에 하수인 또는 공범으로 동원되는 중국 동포들이 갑자기 늘고 있다. 출국 전 막판 돈벌이 수단으로 쉽게 범죄 가담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범죄인들은 이들의 신분상 약점, 그리고 적은 보수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국내 물정에 어두운 이들을 함부로 범죄에 끌어들이고 있다.

농협 현금카드 위조 범죄에 동원됐다가 23일 경찰에 자수한 중국 동포 李모(25)씨의 경우도 한국말을 배우러 유학을 왔다가 범죄인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2001년 7월 입국, K대학 언어교육센터에 입학한 뒤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경기도 성남의 한 공장에서 밤일을 하면서 고학을 했다. 그러나 육체노동에 익숙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고 그는 경찰에서 밝혔다.

李씨는 이후 허드렛일을 하는 직장을 전전하다 지난해 9월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한국인 박현상(30.수배 중)씨의 '아르바이트' 제안에 넘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인출 때마다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려는 부자들 대신 현금을 찾아주는 일을 하면 된다"면서 "힘도 들지 않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유혹한 朴씨에게 넘어갔고 결국 다른 동포 세명과 함께 범죄자가 됐다.

24일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반에 특수강도 혐의로 붙잡힌 裵모(54.여)씨도 비슷한 경우다. 裵씨는 주변의 한국인들과 함께 자신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주인집을 터는 데 가담했다.

25일 중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한 裵씨는 "나이도 많고 중국에 돌아가면 일자리도 없어 최소한 빚만은 털고 한국을 떠나자는 마음에서…"라고 가담 이유를 말했다.

裵씨는 1999년 남편이 폐암으로 숨지자 돈을 벌러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입국 브로커에게 1만5천위안(약 2백16만원)을 사기당했다고 밝혔다. 하는 수 없이 동생에게 빚을 내 간신히 입국했고, 3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5백만원의 빚이 남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꾐에 빠져들었다고 진술했다. 裵씨는 이날 공범들과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돼 결국 25일 출국이 좌절됐다.

◇막판 한탕주의 경계해야=3년 이상 불법체류자에 대해 오는 3월까지 출국하도록 한 법무부 방침이 중국 동포들의 '한탕주의'를 부르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 조선족교회의 서경석 목사는 "강제 출국을 앞두고 돈을 빨리 벌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범죄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며 "3월 강제 출국이 현실화되면 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불법 체류자들이 범죄에 마구 끌려들어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중국 동포들은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브로커들에게 1천만원 정도의 '입국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직에 근무하느라 빚을 갚기 위해서는 최소 2년 동안 한 푼도 안쓰고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죄 의식을 주지 않고 유혹할 경우 범죄에 빠져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세계한민족총연맹 김상열 사무처장은 "한국에 남고 싶어 하는 조선족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범죄가 한창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철재.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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