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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필수 사이, 의사의 선택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객원 칼럼니스트·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김현정]

▲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 김현정 전문의

해마다 봄이 되면 병원들은 근교의 넓은 운동장을 빌려서 체육대회 겸 직원 야유회를 한다. 한번은 배구 경기를 하던 중에 젊은 정형외과 교수 한 사람이 심하게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병원에 돌아와 검사를 받아보니 전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전십자인대 파열의 치료로는 대체 가능한 다른 인대를 이식하는 재건 수술이 보편적이지만,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판단할 때 중요한 요점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환자의 평소 활동성이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처럼 힘있고 정교한 관절 기능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식수술을 받는 게 맞다. 몸을 쓰는 일이라곤 거의 하지 않고 평소 엘리베이터와 자동차만 사용하는 사무직 사람이라면 굳이 수술이 필요 없다.

둘째는 인대가 얼마나 파손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여러 가닥으로 꼬아진 동아줄이 터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일부 섬유는 파열 되더라도 끊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섬유들이 우세하다면 그 동아줄은 잘 버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십자인대의 파열 정도가 약 50% 미만이면 수술을 반려한다. 그런데 절반 이상 끊어져 완전 파열에 가깝다면 이식을 통한 재건 수술을 진행한다.

수술 여부에 대한 결정은 이렇게 몇 가지 정황을 놓고서 무엇이 가장 좋을지 의논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십자인대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활동성과 기능성의 문제이며, 또한 재건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대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수술을 받을 때에는 분명 감수하고 들어갈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단 그 교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으니 선후배 정형외과 의사들이 팀을 이루어 수술에 들어갔다. 단, MRI 영상에서 손상 정도가 얼마만큼인지 확실치 않았으므로, 수술장에서 관절경을 통해 눈으로 직접 인대 상태를 확인해 본 후에 그 결과에 따라 재건 수술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마취가 시작되었고 무릎에 구멍을 뚫고 관절경을 집어 넣었다. 전십자인대는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인대를 둘러싸고 있던 활액막만 조금 붙어서 물 속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수술팀은 잠시 의논을 했고 가장 연장자 교수가 결론을 내렸다. 재건 수술은 진행하지 않았다. 그냥 관절경 사진만 몇 커트 찍고는 수술을 마쳤다.

십 수 년이 지났다. 환자였던 그 젊은 교수는 이제 중년을 훌쩍 넘겼지만, 일상생활은 물론 골프도 잘 친다. 한 마디로 몹시도 멀쩡하게 활동하며 잘 살고 있다.

비슷한 에피소드가 또 있다. 몇 달 전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의 어느 정형외과 교수가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전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 공교롭게도 무릎 관절은 본인의 전공 중의 전공이었다. 전십자인대 재건 수술이라면 평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도 없이 해온 의사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무릎에 이런 일이 발생하자 고민에 빠졌고 결국은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후 예전 같으면 영상검사 확인 후 무조건 수술로 직행하던 진료 패턴에 변화가 왔다고 한다. 요즈음은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도 전십자인대 완전 파열이 진단되어도 일단 상담부터 하고 수술 여부는 신중히 결정한다고 한다. 수술 비율이 확 떨어졌다고 한다. 제 몸이 겪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의료에는 필수인 부분과 선택인 부분이 혼재 되어 있다. 그 경계를 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와 명분이 작동하기 때문에 흑백을 구분해 내기란 정말 쉽지 않다. 자칫 하면 부족해지고 자칫하면 과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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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박사 기자 osgirl@korea.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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