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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음에 화음 넣듯 … 자동차 좋은 소리 창조해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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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NVH(소음?진동?잡소리)시뮬레이터를 조작해 소리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이제 모드를 바꿉니다.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

 8일 경기도 화성의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 박동철(46) 현대차 연구위원이 주행 모드를 ‘정숙’에서 ‘스포츠’로 바꾸자 특수 제작된 쏘나타가 탄력을 받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동시에 밋밋했던 엔진음도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주행 모드가 바뀌면서 나는 순수한 엔진 소리가 아니다. 박진감 있는 주행을 즐기는 운전자에 맞춰 엔진음에 더 박력 있는 음을 덧씌운 결과다. 추가된 소리는 차 오디오를 통해 나오지만 엔진음과 한 덩어리가 돼 들려왔다. 박 위원은 “엔진 회전수에 맞춰 화음을 넣듯 소리를 입히기 때문에 운전자는 소리가 첨가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며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운전자가 원하는 느낌의 소리가 나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소리의 세계가 진화하고 있다.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기술에서, 소리를 창조하는 기술로다. 자동차에서 나는 소리 하면 언뜻 엔진음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차량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훨씬 많다. 문을 여닫는 소리, 방향지시등을 작동할 때 나는 소리, 선루프를 여닫는 소리…. 빗방울이 차 위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우타음)의 경우 전문가 청음 평가에서 현대 에쿠스는 8점(10점 만점) 이상이 나오지만, 양철 지붕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나는 차는 4점에 머물기도 한다.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의 NVH2리서치팀은 1년 내내 사운드 디자인에 매달려 지낸다. 이 팀(8명)에는 작곡가 출신도 있다. 컨셉트에 맞는 소리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다. 와인 맛을 감별하는 소믈리에처럼 청음 전문가의 도움도 받는다. 이들은 차에서 나는 소리만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소리 창조 과정은 음악 작·편곡 과정과 비슷하다. 시장조사를 통해 목표로 하는 소리가 정해지면 음역대 등을 고려해 소리를 만든다. 박 위원은 “청각적으론 도서관의 정적이 오히려 불편하다”며 “무조건 조용한 차가 아니라 좋은 소리가 나는 차를 만드는 게 새 경향”이라고 말했다. 자연에서 소리를 얻기도 한다. 호랑이 소리의 특징을 스포츠카 엔진 소리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완성된 소리는 차 설계 단계부터 반영된다. 문이 잠길 때 나는 ‘찰칵’ 하는 소리를 디자인한 후, 잠금장치 부품의 모양을 만드는 식이다. 장치가 작동하는 속도도 소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작동 속도까지 계산한다. 1억원이 넘는 NVH시뮬레이션 기기도 큰 역할을 한다. 평범하게 생긴 책상 밑에 설치된 가속페달을 밟으면 도로 상태, 바람 세기, 속도, 타이어 공기압 등에 따른 소리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박 위원은 “어떤 소리도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며 “엔지니어링도 결국은 정성”이라고 말했다.

 공들여 만든 소리도 매번 실전 배치되진 않는다. 나라별로 소리 호감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방향지시등을 작동했을 때 나는 소리는 한국에선 10명 중 8∼9명은 부드러운 소리를 선호한다. 그러나 독일에선 이 소리는 매번 선호도 꼴찌다. 현대차 관계자는 “독일에선 ‘똑딱 똑딱’처럼 규칙적인 기계음에 가까운 지시등 소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 유럽에선 자동차를 가속할 때 적당한 엔진음이 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에선 정숙성을 최대의 덕목으로 꼽는 소비자가 많다. 박 위원은 “‘소리로 세상을 바꾼다’가 우리 팀의 모토”라며 “현대차가 연간 700만 대가 팔리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더 좋은 소리가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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