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의 거리문화 읽기] 전구로 장식된 가로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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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시가 되면 도시의 거리는 불빛으로 장식된다.

낮에는 그저 잎이 다 져버린 겨울 나무에 지나지 않던 가로수들이 불을 밝힌 꼬마 전구들에 의해 하나의 환상이 되는 것이다. 그 사이를 사람들은 추위에 쫓기듯이 종종걸음으로 걷거나 그 불빛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불을 볼 때마다 어렸을 적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보던 먼 도시의 밤 하늘이 떠오른다.

다른 곳에 비해 이상하게 불그레하고 밝던 하늘. 그 때 도시란 아주 먼 곳,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곳이었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명이 그렇듯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은 모든 것들을 나누고, 또 나누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자연을 나누고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들을 자꾸 나누어 나간다. 물도 불도 마찬가지다.

그 기능이 기준이 돼 조명용.취사용.장식용.오락용.전쟁용 등으로 끝 없이 나누어 나간다. 그리고 그 나눔에 따라 수 많은 기구가 생산.소비된다. 그 세분화, 얼마나 정교하게 나누어졌느냐가 발달.삶의 질의 척도인 것이다.

거리의 가로수에 잔뜩 매달린 꼬마 전구들도 바로 그 불들이다. 다른 용도는 모조리 배제된 철저한 장식용 불. 불을 기능적으로 분화시킨것 중의 극치다.

하지만 꼬마 전구로 장식된 가로수들을 보면 인간이란 아직도 불을 숭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하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불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 그 어떤 근원적인 믿음이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연전에 본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이 원시적 방법으로 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손을 다쳐가며 애쓰던 장면이. 그것이 인간이 불을 만드는 원형적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원형에서 까마득히 멀다.

스위치를 올리거나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기능에 맞춰 잘 나눠진 불들이 켜지고 불꽃을 내며 타오르기 때문이다. 거리에 세워진 불의 바벨탑, 단 한가지 용도로만 쓸 수 있게 만들어진 그 불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환영이다. 낮에는 눈에 띄지 않고 밤에만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환영.

그러니까 그것은 전기 나무이자 전기 꽃이며 우리 문명의 한 상징인 것이다.

혹시 나무를 환영으로 바꿔놓은 사람들은 작은 꼬마 전구 하나만큼씩이라도 세상이 밝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폭등한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과 끔찍한 게이트들과 지겨운 정치 이야기들로 가득찬 새해 첫머리, 그 불을 보는 것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도록 하려는 것은 아닐까. 세워진 장소로 볼 때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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