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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래도 난좋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결혼이후 한번도 직장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한 일이 없는 나더러 그들은 반 농 반 비꼬는 말로 공처가라고들 하지만 듣기에 거슬리지않고 오히려 마음 흐뭇해진다. 실은 공처가가 아닌데도 이유야 있겠지만 비록 값싼 한두가지 찬일망정 정성껏 마련해놓고 나오기만 기다려 대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나는 절로 걸음을 빨리 하고 싶어지는것이다. 나대로의 아내에 대한 애정 때문이리라.
그날도 문까지 따라나와 「넥타이」를 바로해주며 내가 좋아하는 감자볶음을 해놓겠다던 아내의 말을 되새기며 20원짜리 가락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골목에서부터 침을 삼키며 돌아왔다. 아내는 그날따라 『오늘은 저넉준빌 안했어요.이 흑석동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가 저에게 저넉을 사겠대요. 미안하지만 한끼만 사자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남자가 바로 당신이예요』하고 뜻밖의 말끝을 맺는다. 웃는 아내의 얼굴은 한결 고와보였다. 모처럼 동창생이 왔다가 방금 갔다면서 급히 부엌으로 가는 아내에게 시선을 준채, 그러고보니 얄팍한 월급봉투때문에 오랫동안 외식을 한번 오붓이 못한데 생각이 미치자 저자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아내의 앞을 막아섰다. <이세길·32세·남·서울영등포구흑석2동79의36 4통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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