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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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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에 여름내 간직했던 당의 정열이 마침내 타오르는가!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홍조 띤 이절의 호흡이 맑은 햇살을 마시며 활짝 스며들었다.
타는 태양아래 수없이 익혀온 그 많은 나날의 가락을 엮어 가을은 발짝마다 차곡차곡 예쁘고 미쁜 당월의 정성을 묽게 수놓아주고 있다.
단풍경치는 가을 한국의 미. 가을 하늘이 푸르면 푸를수록 말없는 멧부리를 뒤덮은 단풍은 붉디붉다.
설악산과 금강산의 단풍이 장엄한데 비해 호남 명산 내장의 단풍은 여성적-. 때문에 한없이 수줍어 붉은 색이 더 한층 짙은지도 모른다.
임진난 때 호남 승병대장 희묵대사가 진을 쳤었다는 「유군이 재」(유군치)를 넘어서면 높지 않은 봉우리들이 요리 조리 술래잡기를 하고 깊지 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비파를 즐긴다, 계곡의 길이는 10「킬로」∼8「킬로」. 그리 험하지 않는 멧부리와 꼴짜기가 거의 수평으로 구절양장 같다 하여 내장이라 이름인가?
그러나 내장산 8백70여 정보 중 신선봉은 해발 7백63「미터」. 백제 무왕 때는 신령조차 숨는다고 하여 당은산이라고도 불렀다고….
서로 서내봉·신선봉, 동으로 장군봉·문필봉, 남으로 연지봉이 우쭐우쭐 둘러싸여 이루어 놓은 내장산은 분명 심산유곡에 틀림없다.
이 청류가 깃들인 심산유곡이 철 따라 그 모습을 바꾸고 단장을 새로이 하고…. 붉은 냄새를 풍길 듯 아름다운 단풍은 못다 이룬 소원을 호소함인가….
내장산 단풍경치 중에도 농기구인 「쓰렛발」 같다고 하여 이름진 쓰레봉(서내봉)의 단풍은 기암괴석에 여울져 가관. 시커먼 절벽 사이사이에 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내장산 단풍이 얼마나 붉고 밝은가를 알려면 내장사 입구의 단풍「터널」. 2백여주의 단풍이 길이 1백「미터」되는 길 양쪽에 숲을 이루고 있어 그 속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홍색 세상. 어느 촌노는 단풍「터널」을 지나 나오면 햇볕이 있는 밖에 나와도 홍가(홍가)를 입은 듯하다고 침이 말랐다.
가을 단풍은 보통 빨강, 노랑, 갈색을 이름하는데 단풍나무와 담쟁이덩굴은 빨갛게 물들고, 은행나무와 「포플러」 등은 노랗게, 갈참나무나 떡갈나무종류는 갈색으로 물든다. 따라서 가을 단풍은 5색 또는 7색이라 불리는데 내장의 단풍은 단풍나무의 단풍으로 그 붉은 색을 자랑하는 것이다.
다섯 잎으로 쪼개진 이파리를 날카롭게 쭉 뻗고 그 사이 심줄마저 붉게 물들여 핏빛처럼 붉게 타는 단풍나무의 단풍은 곧 단풍의 왕. 내장산 골짜기마다, 산허리 능선줄기마다 푸르다못해 검게 이끼긴 암석사이에 줄기차게 단풍나무가 뒤덮어 그 고운 빛을 요염하게 내뿜고 있다.
거기다 서내봉 무너져 내려 벼랑을 이룬 곳, 원적암 주위에는 사방 10여정보의 야자나무 숲의 푸른 빛깔이 총총히 아롱져있다.
허리아름 9척의 고목이 있는가하면, 비자나무 잎사귀는 하늘을 가려 비자밀림. 4백년을 헤아리는 나이테의 거목들이 비자향 속에 태고의 신비를 속삭인다.
파란, 상록수 수풀 속에 외로이 부끄럽게 핀 단풍나무 한 그루. 그 빛은 수해 때문에 더욱 붉고 더욱 곱다.
고내장의 황폐한 축대 위에서 보는 단풍경치도 괜찮지만 김선폭포의 내리지르는 하얀 안개 속에서의 단풍경치도 자못 장관.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단풍의 만개를 기다려 내장산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단풍놀이의 아낙네들은 빨간 단풍잎을 하나 따서 비녀사이에 꽂고 단풍빛깔처럼 곱고 밝게 살기를 마음 속에 빈다고 했다.
높지 않으면서도 심원한 맛을 풍기는 내장산 심산유곡에는 임진난 때 이조관녹을 전주에서 가져다 숨겨두었던 용굴이 있는가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 굴거리나무 부락도 있다.
그 깊은 천연의 수해와 청류를 옆에 끼고 속세를 떠나 우뚝 선 것은 내장사. 영봉이라 일컬어지는 서내봉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백제 무왕 37년 영은조사가 창건한 후 1천3백여년을 내려오던 고찰이지만 6·25 동란 때 전소되고 지금은 다시 복구한 대웅전뿐-. 백학명종사가 70년 전 자생산시불도라는 선농일여종풍을 일으킨 주찰의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세존과 나한을 빚어 만든 매단토를 파냈다는 웅덩이가 지금도 있는 불출암을 비롯한 7개 암자는 내장구곡이 지금도 신성임을 아쉰 듯 간직한 채 관광객으로 더럽혀질까 두려워하는 듯 고즈너기 몸 사리고 있다.
글·양태조 기자
사진·김준배 기자
◇카메라=「마미아 C 33」 65㎜ F 3.5 30분의 1초 F 16 「엑타크롬」(ASA)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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