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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생각’이 다른 디자인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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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렉슨 디자인 CEO 르네 아다가 지난달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2013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부스에서 전시 중인 고무 라디오 ‘티코’를 들어보이고 있다. ‘티코’는 1997년 첫 출시돼 지금까지 70만 개 넘게 판매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어제 왔다고 했다. 출국 날짜는 내일이란다. 2박3일 사이에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일정이다. 눈빛엔 피곤한 기색이 없었지만 다리는 절뚝였다. 지난달 스키를 타다 다친 다리가 미처 낫지 않아서라고 했다.

프랑스의 생활용품 업체 ‘렉슨 디자인’ CEO 르네 아다(60). 직원 수 20명으로, 전 세계 75개국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있는 열정의 사나이다. 그가 지난달 27일부터 3월 3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참석차 방한했다. 부대행사로 진행된 ‘리빙트렌드세미나’에서 ‘차별성-유일한 생존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차별화”라는 르네 아다를 만나 그의 사업 철학을 들어봤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그토록 ‘차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눈에 띈다’는 뜻이고, 그건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눈에 띄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르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브랜드는 죽은 브랜드다.”

-남과 다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방법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란 질문에서 나온다. ‘원한다(want)’는 것은 ‘필요하다(need)’와 다른 개념이다. 무엇이 필요할 땐 가게에 가서 사면 된다. 하지만 원하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원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물건. 그것을 만드는 게 남과 다른 제품을 만드는 비법이다. 우리 회사에서 1997년 출시한 고무 소재 라디오 ‘티코 라디오’는 ‘샤워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제품이다. 프랑스 디자이너 마크 베르티에가 디자인한 이 라디오는 2000년 ‘타임’지 표지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좋은 디자인이란 어떤 디자인인가.

“디자인은 ‘마법’이다. 디자인에 따라 어떤 제품을 처음 봤을 때 ‘괜찮네’ ‘별로네’로 느낌이 나뉜다. 좋은 디자인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한 번 보고 금방 기억할 수 있고, 또 어디서 봐도 ‘그 물건이구나’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 또 디자인이 좋다, 나쁘다 여부는 시간이 흘러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좋은 평가를 받아야 좋은 디자인이다.”

-이번 ‘2013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주제가 ‘신(新)가족 풍경’이었다. 1인 가구, 노인 가구 등 가족 형태 변화에 따른 생활디자인 변화를 짚어보자는 의미다. 이런 추세 속에서 생활용품의 디자인에도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 전망하나.

“어떤 세상이 와도 일상용품은 필요하다. 단순하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 그러면서도 혁신적인 제품의 설 자리는 점점 넓어질 게 분명하다. 또 앞으로 ‘한 제품 한 기능(One Product One Function)’ 제품의 인기가 더 높아지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계 기능에 충실한 시계, 라디오 기능에 충실한 라디오 등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본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에 갖은 제품들의 기능을 왜 굳이 다 넣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디자인 공부나 경영학 공부는 어디에서 했나.

2000년 3월 20일자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티코’ 라디오. 르네 아다는 “타임지 기자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측에 ‘혁신적인 디자인 제품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해 실리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하진 않았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열다섯 살까지는 모범생으로 살았는데, 그 뒤 3년 동안은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노는 아이’로 지냈다. 열여덟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 살이 되던 첫날부터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라이터를 수입하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15년 넘게 일하면서 ‘뭔가 제품에 ‘감(sense)’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는 자각을 했다.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처음 눈을 뜬 것이다. 보다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90년 내 회사 ‘렉슨 디자인’을 창업했다. 여러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혼(spirit)’을 만들어내는 회사다.”

-프랑스 본사 직원이 20명밖에 없다는데.

“제품의 디자인과 제조·판매 등 모든 공정을 외부에 맡긴다. 유능한 디자이너와 고품질 제품 생산 능력이 있는 공장 등을 찾아내는 게 본사 직원의 일이다. 그동안 세계 3대 디자이너로 꼽히는 필립 스탁 등 유명 디자이너와도 작업했고,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디자이너와도 작업했다. 제품 생산은 대부분 중국과 대만·베트남에 있는 공장에서 한다. 현재 75개국 6000여 곳의 가게에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회사 규모는 지금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작으면 생존 자체가 쉽지 않고, 더 커지면 처음의 열정을 잊고 이익 추구 중심의 회사가 돼버릴 우려가 크다.”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인가.

“76년 처음 방한한 이래 셀 수 없이 많이 왔다. 76년엔 저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찾으러 왔다. ‘렉슨 디자인’ 제품을 한국에서 팔기 시작한 건 93년부터다. 그동안 한국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발전했다. 뭐든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고, 굉장히 국제적이다.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의 실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아직 세계시장을 겨냥한 대량 생산 체계에 아이디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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