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산·염소 누출 이어 기름 탱크 쾅… 구미시민 패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폭발로 떨어져나간 뚜껑 구미경찰서 현장감식반이 7일 오전 경북 구미시 오태동 한국광유 옥외탱크 폭발 현장에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저장 탱크의 덮개가 폭발 충격으로 떨어져 나와 있다. [구미=프리랜서 공정식]

“자고 나면 사고가 터지니 불안해서 못 살겠습니다. 시민들이 아무리 ‘안전’을 외쳐도 메아리조차 없어요.”

  경북 구미 시민 박선규(43)씨는 “이렇게 사고가 잦은 곳에 어떻게 살겠느냐”며 “당장 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산가스와 염소가스가 누출된 구미에서 7일 또다시 유류저장탱크가 폭발하자 41만 구미시민이 패닉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9월 구미공단 입주업체에서 불산가스가 누출된 이후 6개월 동안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네 차례 이어져서다. 주민들은 “불산가스 누출 때 주민 1만여 명이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진다”며 울상이다.

 이날 유류저장탱크 폭발사고는 오전 8시21분 일어났다. 옥외에 있는 20만L짜리 벙커 B유(중유) 저장탱크가 폭발하면서 탱크 상부의 철판 덮개가 떨어져 나갔다. 이어 탱크 안에 있던 기름 4000L에 불이 붙었다. 탱크 인근에 3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번 사고가 탱크 안에 있던 유증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탱크 내부의 압력이 높아져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업체 직원은 “탱크 속 벙커 B유는 평상시 아스팔트처럼 굳어 있는 형태여서 탱크로리에 옮겨 담을 때는 전기모터를 이용해 40도 정도로 데운다”며 “작업 도중 갑자기 ‘펑’ 하고 폭발했다”고 진술했다.

 폭발한 탱크는 1999년 11월 사용을 시작한 뒤 한 차례도 정밀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미소방서 관계자는 “수시로 찾아가 소화기 16대가 있는지 여부만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작업자들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 중이다.

 시민들을 더욱 불안케 하는 것은 잇따른 사고가 ‘안전불감증’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5일 발생한 구미케미칼의 염소가스 누출은 정화용 송풍기 작동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 게 원인이었다. 앞서 LG실트론에서 일어난 불산·초산·질산 혼합액 누출 때도 회사 측은 긴급사태 발생 시 지켜야 할 조치요령을 준수하지 않았다.

 구미는 4개 국가산업단지에 1600여 기업이 입주한 국내 대표적인 첨단산업도시다. 이 가운데 유독물질 취급업체가 160여 곳이다. 반도체 부품 같은 첨단제품의 제조 공정에 불산 등 유독물질이 사용된다. 유독물질 누출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강지명(38)씨는 “구미가 ‘사고 도시’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며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안전도시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은 “선진국에선 작업자가 안전모만 쓰지 않아도 해고사유라고 한다”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 관련 법령을 정비해 과실이 있을 경우 엄하게 처벌해야 추가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권삼·김윤호 기자

◆ 화학물질 사고 잇따르는 구미시

2012년

9월 27일 봉산리 휴브글로벌 불산가스 누출

- 5명 사망, 18명 부상

- 주민 1만2000여 명 검진

2013년

3월 2일 임수동 LG실트론 불산 등 혼합산 누출 - 사상자 없음

5일 공단동 구미케미칼 염소가스 누출

-1명 부상, 200여 명 검진

7일 오태동 한국광유 구미지점 옥외 유류저장탱크 폭발 - 사상자 없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