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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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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1인 가구’로 살아온 지 꽤 되었지만 아직 밖에서 혼자 밥을 먹는 데 익숙지 않다. 1인용 좌석이 준비된 식당을 찾아가 보았으나 ‘혼자 온 손님을 배려한 식당에 혼자 왔음을 혼자 과하게 의식하는’ 소심함 탓에 외려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가 25%를 넘어섰다 하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터. 이들과 함께 보며 ‘생활의 교본’으로 삼고 싶은 작품이 있으니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のグルメ)’다.

 국내에도 출간된 같은 제목의 만화(글 구스미 마사유키·그림 다니구치 지로)가 원작이다. 지난해 민영방송 TV 도쿄에서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향이 커 세 번째 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용은 매회 비슷하다. 이노가시라 고로(배우 마쓰시게 유타카)라는 중년 독신남성이 영업을 위해 도쿄 곳곳을 돌아다니다 문득 허기를 느끼고 주변의 음식점을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소박하지만 맛깔스러운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 장면.

 일단 이 작품을 보면, 자칫 서글퍼지기 쉬운 ‘혼자 밥 먹기’에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은,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행위다.” 주인공 이노가시라가 가르쳐주는 혼자 밥 먹기의 기술은 ‘열정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그는 배가 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않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 배는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렵게 고른 메뉴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독창적인 평가를 내린다. 치킨가스를 한입 베어 물고 “확실히 ‘치킨’이라고 자기주장을 하고 있군. 돼지와는 세계가 달라” 한다거나, 고기에 집중하다 숯불에 얹은 야채를 바싹 태우고 말았을 땐 “아, 무관심으로 병사들을 개죽음시킨 것과 같지 않은가”라고 탄식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사이, 신기하게도 식사 전에 있었던 골치 아픈 일들이 잊혀진다.

 미국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쓴 『고잉 솔로:싱글턴이 온다』라는 책을 읽다 공감한 부분이 있다. 수명 연장의 시대엔 누구라도 언젠가 싱글턴(singleton·독신자)이 될 수 있으며, 비참한 싱글턴이 되지 않으려면 일상을 홀로 감당하는 신체적·감정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외식을 할 수 있는가’는 그 기본 중의 기본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도 ‘홀로 밥 먹기’를 장려하는 드라마가 나와 줄 때가 됐다. 물론 주연배우로는 ‘먹방’의 대가 하정우님을 강력 추천한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