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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도 중국 바둑 잠재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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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石佛)과 둔도(鈍刀).

중국에서는 이창호9단을 '석불'이라 부르고 후야오위(胡耀宇)7단을 '둔도'라 부른다. 몇달을 끈 농심신라면배 전 과정을 통틀어 우승의 향방이 갈린 승부처는 바로 이 석불과 둔도의 한판승부였다. 이 대결에 쏠린 중국의 수많은 눈은 긴장과 기대, 흥분으로 빛났다.

"석불은 날카로운 칼로는 벨 수 없다. 오직 후야오위의 무딘 칼날만이 석불을 동강낼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측의 믿음이었다.

22일 오후 3시(한국시간) 중국 상하이(上海) 훙차오(虹橋)호텔.

5연승을 달려온 후야오위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는 20일엔 한국의 조훈현9단에게 한집반승을 거두며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패배한 왕레이(王磊)8단의 아픔을 씻어주었고 21일엔 일본의 주장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에게 반집승을 거두며 중국팬들에게 '일본 전멸'의 통쾌함을 선사했다.

모두 미세한 승부였으나 후야오위7단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 매스컴은 이 승리들을 격찬하며 "후야오위는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건너지 않았다." "급박한 초읽기 속에서도 조훈현의 하늘과 땅을 뒤집는 신공(神功)을 막아냈다"고 썼다.

이제 최후의 방벽인 이창호만 남았는데 후야오위는 지난해 이창호에게 2전2승을 거둔 새로운 천적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李9단이 두터움과 수비를 위주로 한 지구전 스타일이라면 후야오위 역시 두텁고 느리다. '둔도(鈍刀)'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기풍이다.

22일의 대국은 흑을 쥔 이창호9단의 우세로 출발했다. 우하의 초반 대접전에서 수읽기가 탁월한 두 기사가 정면충돌한 결과 李9단이 소득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백은 사방이 두터웠고 호시탐탐 흑의 대마를 노리는 상황이었다. 李9단은 한발 후퇴해 대마에 가일수했는데 그 순간 후야오위의 둔도가 번쩍 빛나더니 상변 흑진 속으로 달려들어 큰 수를 만들어냈다.

李9단은 위기에 몰렸다. 해설을 맡은 유창혁9단조차 흑의 패배를 예감하는 발언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후야오위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급박하게 쫓아오는 마지막 1분 초읽기 탓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유가 안된다. 조훈현9단과 대결할 때는 그토록 냉정하던 21세의 후야오위가 우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돌연 미치기 시작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는 우승에의 흥분과 긴장, 그 무거움에 지고 말았던 것이다.

'석불'은 시종 조용히 기다렸다. 상대가 갈팡질팡 허둥대며 흘리는 수많은 손해를 조용히 챙기며 李9단은 결국 6집반의 대차로 승리를 거뒀다.

생각하면 후야오위는 스스로 무너졌다. 그 옛날 녜웨이핑(섭衛平)9단으로부터 마샤오춘(馬曉春).창하오(常昊).왕레이가 그랬듯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무너졌다. 그들은 정신력에서 한국에 졌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손에 땀을 쥐고 승부를 지켜보던 중국 팬들은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23일 벌어진 이창호9단 대 뤄시허(羅洗河)9단의 최종전은 어찌 보면 이창호-후야오위 대결의 후렴과 같은 것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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