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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청첩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결혼 청첩장을 받고 어리둥절하는 사람들이있다. 누가 결혼을 하는지를 아는데 한참이걸렸다. 아니, 그것이 결혼청첩장이란것도알기가 힘이들 지경이다. 마치 무슨 정당(정당)의발기문처럼 되어있기 때문이다. 청첩장뒷자락에 등장한무려 10여개의 이름들은정계(정계)의 제제다사들이다. 그「높은이름」들은 앞을 다투어 명성을 자랑한다. 주례가 그렇고 5, 6명의 청첩인들이 그렇다. 어떤 청첩장엔 거의20명의이름이 법석을 부리는 일도있다. 신랑 신부의 부친두분과 본인들과 주례와 우인(우인)대표 7명과 청첩인6명과… 일동18명. 게다가 신랑신부의 영세명(영세명)까지 등장하고 보면20개의 이름이된다. 그것만으로도 청첩장속에서 성황된 잔치를 벌일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또하나의 연출은 마치「커닝」이라도 하듯이 결혼식 당일에 신부 신랑의 이름을적은 쪽지를 주례손에 들려주며『저희들 이름은…』이라는식위 당부를하는 막후(막후)의 광경. 그러니까 주례며 청첩인 제씨는아무 연고도없이 그 이름들을 잠깐빌어 사용하는것이다. 주례는 식을 집전하는 자리에서 연상『에, 어어, 에…신랑 누구는…』하며 그 「커닝·페이퍼」를훔쳐보는 민망스러움을 연출한다.
결혼식을 초속(초속)으로 해치우는 풍조에 곁들여 청첩장은 날로 타락해가고 있다.「정답고 따뜻한 편지」는 마치「배경과세도」의 진열장이라도 되는듯이 화려한 인명록을펴고 있다. 정작 식장에는 청첩인도 우인대표 제씨들도그 얼굴을 찾아볼수 없는경우가 있다. 손님만모이고 그들을 청한 주인공은없는꼴이 아닐까.
여기 또다른 예도있다.
『정신없이, 바쁘다』는 필치로 아무렇게나 이름을 갈겨쓴 겉봉속에든 청첩장. 우표는 거꾸로 매달려 있고, 먹은 부고(부고)처럼흐릿한 색깔.
「손님을 청하는 글발」인바에야 그정중한면모를 스스로 보여야 한다. 정중한면모는 제제다사를 청첩인으로「도열」하지않아도 쉽게 갖출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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