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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 칼럼

틀니 전쟁, 임플란트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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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철호
논설위원

‘정치 테마주’ 가운데 숨은 보석은 따로 있다. 코스닥의 ‘오스템임플란트’가 그중 하나다. 지난해 봄 1만원이던 주가가 박근혜 대통령의 ‘어르신 임플란트’ 바람을 타고 3만5000원대에 육박한다. 이 주식은 2008년부터 오랫동안 헤맸다. 임플란트가 도입된 지 10여 년 만에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피로감이 누적됐다. 임플란트 남발과 과잉시술의 잡음도 판쳤다. 혼미한 분위기는 임플란트 공약으로 순식간에 보랏빛이 됐다. 626만 명의 노인 시장이 열리면서 다시 초고속성장을 꿈꾸고 있다.

 값비싼 임플란트에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솔직히 사치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야당이 손가락질할 자격은 없다. 원래 이 공약의 저작권은 야당 소유였다. 2010년 지방선거 때 김두관 경남지사가 들고나와 단단히 재미를 봤다. 대선 때 진보진영은 “임플란트 공약에 20조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노인 인구에다 빠진 이빨을 기계적으로 곱해 뻥튀기한 숫자다. 반면 새누리당은 3000억원으로 가능하다고 우겼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추계한 금액은 1조8335억원. 인수위원회가 75세 이상부터 단계적으로, 어금니에 한해, 그리고 본인부담금 50%로 손질한 덕분이다.

 임플란트 사업의 운명은 틀니 전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틀니는 1996년부터 모든 정부가 빠짐없이 공약한 사안이다. 16년간 끌어온 전쟁은 지난해 7월 막을 내렸다. 완전 틀니부터 건강보험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틀니 때문에 건보가 휘청댈 것이란 걱정은 기우(杞憂)로 끝날 조짐이다. 건보공단은 틀니 지원에 3288억원이 들 것으로 계산했으나 지난해 하반기에 나간 돈은 265억원에 불과했다. 건보공단의 이화연 차장은 “본인부담금이 50만원에 이르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오랜 관습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임플란트도 얼마나 많은 노인이 할지 미지수다. 우선 75세 이상은 잇몸뼈가 망가져 아예 임플란트가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다. 또 가난한 노인들이 개당 70만~80만원 정도의 본인부담금을 감당할지 의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임플란트를 할 노인들은 상당수가 이미 했다는 낙관론도 고개를 든다. 하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성인 치아 28개 중 큰어금니·작은어금니를 합쳐 무려 16개가 어금니다. 보건복지부는 일단 어금니 2개부터 지원해 순차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모양이다. 건강보험 체력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누구도 노인의 저작권(咀嚼權:씹을 권리) 회복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정치권이 갑자기 노인의 구강(口腔)에 너무 친절한 게 꺼림칙하다. 완전 틀니→부분 틀니·스케일링(올해 7월)→임플란트(2014년)까지 한꺼번에 건강보험이 지원된다. 물론 30%대 중반에 불과한 치과 진료의 건보 보장성은 올려야 한다. 하지만 매년 1조원 남짓이던 건보 치과 급여가 내년이면 3배나 급증할 게 분명해 보인다. 이러다간 일본의 실패를 뒤따르지 않을까 겁난다.

 일본의 재정적자에는 노인 의료비 급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현재 일본의 노인 의료비 14.2조 엔 가운데 본인이 내는 돈은 14.3%인 2조 엔 정도다. 나머지 12조 엔을 재정으로 메우는 셈이다. 일본의 교육·과학 예산과 토목사업 예산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일본은 60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38%를 넘고 투표율은 84%를 웃돈다. 정치인들이 ‘실버 민주주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도다. 그러니 70대 이상의 의료비 자비 부담률을 20%로 올리기로 해 놓고 6년째 손을 놓고 있다. 반면 투표율이 절반이 안 되는 일본의 20~30대는 찬밥 신세다.

 일본 재정전문가인 도이 다케로(土居丈郞) 게이오대 교수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지난 20년간 출생률·사망률 추계에서 미세한 오차가 누적돼 고령사회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또 하나, 의료보험과 연금 개혁에 미적댄 게 패착이다. 특히 노년층 의료비 지원은 반드시 절제해야 한다. 한국도 똑같은 재앙을 맞을지 모른다.” 실제로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보험료를 매년 4% 이상 올리지 않으면 우리 건강보험도 망가지게 돼 있다.

요즘 일본에는 세대 전쟁이 한창이다. ‘노인 망국론’까지 나돈다. 오죽하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이 “죽고 싶은 노인은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막말까지 했을까. 노인 의료비에 신음하는 단말마적 비명이다. 정치판에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치만큼 나쁜 정치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게 바로 포퓰리즘이기 때문이다. 노인의 입속 건강까지 경쟁적으로 챙기는 우리 정치권을 보면 불길한 징조가 어른거린다. 다음 선거에 또 어떤 희한한 공약이 튀어 나올지….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