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품평(박영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전은 살아야겠다. 이번 15회 국전도 연중행사의 하나로서 헛되게 시간을 메우고 있지나 않은지? 혹은 이 나라 예술향상을 목적으로 한 1년의 결산이며 새로운 검토를 통한 자각과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진정 볼 수 있을는지?
동양화의 특성은 소박함에 있으며 이것은 바로 암시적 표기방법의 소치일 것이다. 동양화가 정적이며 유현하다면 상기 방법에 의한 것이 알닐지….
아연질식할 사실은 노장 김은호씨의 <장고춤>이다 야비하고 농도 없는 채색, 차원 없는 원시적 묘사, 이것이 춤추는 인물의 율동 등과는 무한히 멀다.
창작능력이 부진한 동양화부의 심사위원 권영우씨<작품66-34>, 안상철씨<영66-9>의 경우에 있어서는 의욕적 모색과 독창적 시도는 엿보이나 이러한 표현은 원래 추상미술로부터 종합미술<칠·조각·구성>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성을 시도함으로써 나타날 현상이다.
씨들의 작품은 너무도 정리되어 있고 조작적 배치를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들은 탐구적 시도라기 보다는 모방적 작품이라는 감을 짙게한다.
새로운 힘과 움직임을 슬며시 느끼게 하는 곳이 조각부다.
손필영씨의 <천의>는 부피에 치중되어 부분적 강조와 그 대조적 표현으로 힘과 허약이 동시에 있으며 생에 내포되어 있는 신비성과 불가항력적 내용을 절실히 느끼게한다.
배형식씨 <피리 부는 여인>은 다각도적 감상을 필요로 하는 작품으로서 선 중심으로부터 부피의 보충을 알맞게 받고 있으며 세련된 조형으로 무리 없는 정직한 작품이다.
박종배씨<역사의 원·2>는 틀이 잡힌 확실한 작품이며 작가의 분석적 추구는 작품의 뜻을 여유있게 드러내고 있다.
문제의 대통령상 수상 작품 강태성씨<해율>은 착상에 수긍이 가나 조소면에 있어 감동을 잃고 있다. 작품자체가 지녀야할 그 뜻을 과연 다하고 있지 못하다. 선이나 부분적 강조로써 표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지는 않았는지?
사진부에 있어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필름」종별의 기입을 해야 할줄 안다. 심사위원 이건중씨<경쟁>에 있어서 사용된 채색은 아름답기보다는 추잡하기만 하다.
문선호씨 <기다림>은 회화적 효과가 두드러진 호감이 가는 작품이며 박형득씨 <비>는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난 가작이다.
공예부에서는 현대화한 <모양>과 <장식>등은 우리들의 실생활과 유리된 감을 주며 더욱이 재료의 개성을 죽이거나 덮어버린 결과들이 안타깝다. 생활면과 접근하여 사치 장식적인 면으로부터 이탈하여 편리성에 치중하는 데 현대 공예의 특성이 있다.
건축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거대병과 현실성 없는 이상적 경향이다.
문신규씨<공장노동자의 성>은 필요성에 입각한 착상은 시인이 되나 이러한 집단거주체의 기반적 조건, 즉 생활면에 필요한 상점·오락기관은 어떻게 된 것인지? 심사위원 김조춘씨<미이자에 속한 공장사무소>는 그 아이디어에 있어서 지나치게 공상적이다. 서양화부에 있어서 암담한 사실화 계열은 소재의 특성을 한결같이 안보여준다.
가령 소재대상이 <사과>라면 색채를 통한 한<사과>가 있겠고, <사과>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원질적제요소를 연상케하는 그<사과>아닌 또 한 <사과>도 있을 것이다. 만들어진<표본>사과보다는 차라리 시들어진<사과>가 요구된다.
심사위원 김인승씨<청>에 있어서는 그 기술에 있어 숙련된 색채와 예민한 명도감, 얄팍한 칠로써 말쑥하게 처리되어져 있기는 하나 빛좋은 개살구를 연상케 한다.
명장「앵글」의 말을 인용한다면 예쁘게 나체모델을 묘사하던 제자에게 <동침할 여자는 아니겠지>한 신랄한 말을 사시 한번 생각게 한다.
사실화로서 이 경지에 이르러 작가자신이나 대중에게 만족감은 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작품<청>은 전시된 여타 사실화를 무색케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국전을 그나마도 빛나게한 추상작품들이 전시된 전시장을 거치며 눈을 끌게한 김연중<전변>, 이융세씨<회공>, 김문자씨<영시>, 이순민씨<수창·밤>등은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는 의지와 창작성을 여유 있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의 추상적 표현은 분석 또는 환각으로 싸인 선·색 등을 통해 삶의 신비성을 추구하고 있다.
의욕적인 이러한 모색은 중견작가들의 선배로서의 좋은 시범과 경험을 연상케 한다.
특히 몇몇 중견작가의 최근 활동은 우리나라 추상회화운동에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견작가, 새 세대의 물결, 이 상호간의 교류와 양자의 위치는 금후 남겨질 우리나라 미술 체계가 될 것이다. 내일이 기대된다. <수도여사대교수·미술평론가·미학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