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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의 최고지도자 효봉 스님의 입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5일 상오 11시 경남 밀양군 표충사에서 79세를 일기로 입적한 한국 불교의 최고지도자인 이효봉 스님의 유해가 17일 상오 10시 서울 조계사에 도착했다.「앰뷸런스」로 운구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대 대종사(통일종단) 이효봉(79)스님의 유해는 대웅전 앞에서 조계종 종회의장 이청담 스님의 독경으로 유해 봉영식 뒤에 극락길의 마지막 회향장소인 정화기념회건에 안치되어, 시식이 올려졌다. 효봉 스님의 종단장은 7일장으로 오는 21일 상오 10시 수유리 화계사에서 화장된다.

<효봉스님의 일생>
효봉 대종사는 1888년 평양에서 출생 평양고보,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평양 복심 법원(지금의 고등법원)판사로 10년 동안 재직한 일이 있고 33세때 삭발, 불교에 귀의한 이래 40여 년 동안 이 나라 불교도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추앙 받아온 원로스님이었다.
그가 법관생활에서 불교에 귀의하기는 어떤 살인 피고 사건을 오판한 데서 큰 충격을 받은 때문이었다.
그가 평양 복심 법원에서 한 피고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는데 그 뒤 다른 진범이 나타나게 되자 오판을 한 자책과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나는 인간을 벌할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되었고 여기에서 처와 두 아들을 버린 채 홀연히 평양을 떠나 방랑의 길에 올랐다. 3년 동안이나 엿장수, 노동자 등으로 각지를 떠돌다가 1925년 7월1일 금강산 신계사의 보운암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했던 것이다.
「의지할 곳 없는 독신」이라고만 속여오던 그가 금강산에 들어간지 7년 만에 우연히 전력이 드러나자 곧 금강산을 떠나 상원사(오대산) 정암사(강원도정선군) 봉정암(설악산) 등 절에서 안거하면서 오후 불식과 장좌 참선을 9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그 후 송광사(전남 승주군)를 거쳐 마지막을 표충사에서 조용히 보냈다. 그는 항시 제자들에게 『진실 하라, 후회하지 말라, 법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타일렀고 무슨 일이든 자기가 주장하는 일이 관철이 안될 때는 단식과 좌선을 계속했던 자비심 많은 무저항주의자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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