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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상식한 「상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만상 찡그린 맏상주가 혼자말을 중얼거린다. 『동네사람 일가친척한테 욕안먹으려면 뒤뜰 거머리논 팔고 소한마리 잡아야겠는데 큰일났군. 이일을 어쩐다』쓰디쓰게 입맛을 다시고있다.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걱정이 아버지 여읜 슬픔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둘째 상주는 뒷방에서 문상객들과 어울려 노름이 한창이다.「섰다」판이 점점열기를 띠자 언성이 높아지고 상주까지 소리를 지른다.
바로 그때 먼 곳에 시집간 딸이 싸리문을 들어서면서 목놓아 한바탕 울어제친다. 바성대곡 중간에 삽입되는 대가… 『아이고 우리 아베, 뒤뜰 거머리논 날준다 하더니…아이고 고만 그냥 가셨고나…』욕심스러운 사위, 엉큼한 눈길로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아내의 연기효과를 살핀다.
동네 원로들이 모여들어 격식대로 하고 있는지 살핀다. 상주들은 움츠러들어 『죄중에 할말 없읍니다. 망극할 뿐입니다』를 되풀이 한다. 조객이 분향하면 엉거주춤 옆에 서서 건성으로 『애고 애고』한다.
곡이 적다고 헐뜯는 소리 수군수군.
작은 아들 친구들이 찾아와 악수를 나누며 묻는다. 『요새 재미 어때. 』『뭐 그저 그렇지. 』막내아들은 대나무 상장을 들고 뛰어나가 동네의 악동들과 칼싸움하느라고 정신없다. 며느리들은 짐짓 서러운체 하느라고 진땀 흐리고. 깊은 비탄의 심연속에 잠겨 오열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이틀이 멀다하고 싸우던 어머니 밖에 없다-. 이것은 물론 극단의 경우지만 우리의 장례식이 괴상해져 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최대의 희극은 결혼이고 최대의 비극은 죽음』이라고한 「발자크」가 우리의 장례식을 구경한다면 『아니, 최대의 희극은 죽음』이라고 정정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에게있어 조상숭배는 하나의 종교였다. 가정은 종교를 생활하는 곳이요, 의식이 집행되는 성스러운 전당이기도 했던것이다. 장례식은 가장 엄숙한 종교의식이었다. 그런데 소위 근대화와 더불어 전통적 가치가 완전히 무너져 버려 그런지 어떤지는 잘 알길 없으나 어떤의식보다도 장례식이 우스광스러운 빈껍데기 형식으로 타락해가는 경향이 있는게 사실이다. 내용없는 형식은 참된 인간성을 짓밟는다. 형식에 상부하는 정신을 살리든지 형식을 없애버리든지 무슨수가 나야겠다.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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