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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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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오른쪽)가 2007년 6월 당시 한나라당 17대 대선 경선 캠프 사무실에서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새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 참모총장을, 금융위원장(장관급)에는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을 내정했다. 또 국무총리실장에서 명칭이 바뀌는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는 김동연 재정부 2차관을 임명했다. 토요일에 청와대가 인선을 발표하는 건 이례적이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국가위기 상황에 대처하면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선을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 인사 발표에 대해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를 위한 ‘야당 압박용’이란 관측이 나왔다.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지 않아 김동연 차관은 국무총리실장으로 임명됐고 나중에 국무조정실장으로 재발령낼 예정이다.

신임 남재준(69·육사 25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건 노무현 정부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총장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준 뒤 마땅한 휴식공간이 없어 청와대 참모들이 계룡대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거절하면서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노무현 청와대와 정면으로 부딪친 건 군 법무관을 국방부 산하로 옮기려던 군 사법개혁안에 반대하면서다. 당시 그는 관련 회의에서 “군 법무관(검찰)이 지휘관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이 언급이 “고려시대 무신 반란 사건(정중부의 난)은 무인들을 무시하고 문인들을 우대한 결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무신의 난’을 언급한 것으로 비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군 진급 인사 문제로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그를 지켜봤던 군 관계자는 “당시 남 후보자는 갈등의 원인이 정권 실세이던 386들의 군 흔들기로 인식했었던 것 같다”며 “임기 중 사표를 냈지만 반려돼 2년 임기를 다 마쳤어도 마음고생은 심했다”고 전했다. 군 주변에선 청와대와의 갈등 사례들이 남 후보자가 타고난 ‘무골(武骨)’이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한다.

 육사 시절 남 후보자는 생도들이 지켜야 하는 직각보행을 야간에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술을 잘 마시지 못했지만 꼭 마셔야 할 자리에선 반 잔을 채워 한번에 털어넣곤 했다고 측근들은 기억한다.

  참모총장 역임 후 군에서 2년간 제공하는 자동차를 거부했다. 이 같은 그의 행동이 고집불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참모총장에 재직 중이던 2004년 11월 경춘고속도로 인근 강원도 홍천군에 밭 510㎡를 부인 명의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나 민주통합당이 투기 의혹을 제기할 태세다. 그러나 일각에선 실거래가 기준으로 3080만원 선이었던 땅이 8년 뒤인 지금은 6200만원 정도라 투기로 보긴 약하다는 반응도 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면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이명박계이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난 네가 소위 때부터 한 일을 알고 있다”며 박 캠프 합류를 종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남 후보자는 김 실장에게 군생활 동안 네 차례(6사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연합사 부사령관, 육참총장) 지휘관 자리를 넘겨준 관계다.

 김 실장이 그간 박 대통령의 보이는 측근이었다면 남 후보자는 보이지 않는 군 출신 실세였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군 관계자는 “김장수 실장이 실사구시형이라면 남 후보자는 오로지 내 길을 가는 돌직구형”이라고 평했다. 김 후보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청문회를 하지않은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국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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