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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4) 실용주의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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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3년 8월 11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주한미군 지휘관 초청 만찬. 고건 총리(왼쪽)와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이 잔을 부딪치고 있다. 러포트 사령관은 건배사를 하면서 한국어로 ‘함께 갑시다’를 외쳤다. 고 총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기문 경찰청장(왼쪽부터), 찰스 캠벨 미 8군사령관, 강금실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2003년 5월 9일 경기도 의정부 미군 2보병사단 사령부. 한국의 국무총리인 나는 미 2사단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서 있었다.

 “빠라밤, 빠라밤, 빠라밤.” 군악대 나팔이 세 번 울렸다. 사단 병사들이 일제히 경례를 했다. 나도 웃으며 경례로 답했다.

 24년 만의 미 2사단 방문이었다. 1979년,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해 청와대 정무 제2수석비서관 자격으로 부대를 찾았던 적이 있다. 20여 년이 지나 우리나라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 2사단을 방문하게 됐다.

 청와대 내부에서 반미 기류가 강하던 시기다. 하지만 난 나름의 원칙대로 움직였다. 난 철저한 용미(用美)주의자다.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라면 미국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의다. 친미(親美)도 반미(反美)도 아니다. 실용주의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군 부대 방문 계획을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매주 국무조정실(지금의 국무총리실)에선 총리 일정을 청와대에 보낸다. 방문 일정을 사전에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별다른 회신이나 반응은 없었으니 나름대로 ‘OK’ 사인이 내려왔다 생각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던 때다. 노 대통령도 이런 ‘외교적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당시 난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미 관계를 어떻게 복원하나. 그리고 한반도 내에서 전쟁 억지력을 어떻게 유지하나’.

허버드

 2002년 6월 발생한 ‘효순·미선양 사건(미군 장갑차에 치여 두 여중생이 사망한 사건)’의 후폭풍은 여전했다. 국민 여론은 들끓었고 대선 과정에서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새 정부는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동시에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전략이 추진되고 있었다. ‘용미주의자’ 총리로서 고민은 깊어졌다. 미 2사단 방문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한미군 주둔 여건과 훈련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도 했다. 효순·미선양 사건도 따져보면 미군 부대 주변 도로 상황이 열악한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물론 사건 발생 후 한국에서 제대로 사건 조사를 할 틈도 주지 않고 미군이 사고를 일으킨 운전병을 본국으로 보내버린 게 사태를 악화시킨 근본적 원인이었다. 그 문제도 미국 측 인사를 만날 때마다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사태의 실마리는 하나하나 풀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 2사단을 방문했을 때 약속한 대로 ‘주한미군 주둔 여건 개선 중앙협의회’를 5월 만들었다. 그리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마크 민턴 주한 미 부대사, 랜드 스미스 주한미군 부사령관, 찰스 캠벨 미 8군사령관 등을 초대했다.

 러포트 사령관은 한국어로 건배사를 했다. “함께 갑시다.” 따라서 모두 소리쳤다. “함께 갑시다.”

 그전, 총리로 취임한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다. 2003년 3월 6일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 대사가 나를 찾아왔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리가 되기 전 에드윈 퓰러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이 왔을 때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주한미군 재배치의 세 가지 원칙입니다. 첫째 북핵 문제가 처리된 다음에 기지를 재배치해야 한다. 둘째 대한민국의 전쟁 억지력이 훼손돼선 안 된다. 그리고 셋째가 북한이 남침을 하면 미군이 자동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인계철선(tripwire) 원칙입니다.”

 허버드 대사는 나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인계철선은 폭발물과 연결된 철선으로 건드리면 폭탄이 자동으로 터지는 장치를 말한다.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자동 개입 조항을 다르게 표현하는 속어로 쓰였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거부감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난 인계철선이란 용어를 ‘프런트라인 파트너십(frontline partnership)’으로 바꿔 썼다.

 퓰러 이사장이나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부 장관,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 대사 등 한·미 현인회의 멤버는 나를 종종 찾아와 한·미 관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총리가 되기 전 이들을 만났을 때도 같은 내용의 주한미군 재배치의 3대 원칙을 강조했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버 액션(Overaction)’이었다. 국군 통수권자(군대를 통솔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결례였다. 노 대통령과 이 문제를 사전에 논의한 적은 없었다. 총리로서 권한 범위를 넘어선 발언이었다. 하지만 내 지론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둔 5월 어느 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다.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겸 NSC 사무처장이 나에게 물었다.

 “허버드 대사를 만났을 때 3원칙 얘기를 하셨더군요.”

 “아, 네,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제 지론이었어요. 퓰러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을 만났을 때나 총리 청문회 때도 했던 말입니다.”

 “….”

 라 보좌관이나 회의 석상에 같이 있던 노 대통령이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10년이 지났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됐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으로 남북 긴장은 한층 고조됐다. ‘함께 가자’는 용미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정리= 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리언 러포트(Leon J. Laporte)

2002년 5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뒤 전역했다. 고건 전 총리는 2003년 당시 러포트 사령관에게 ‘라포도(羅鋪道)’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 합죽선에 한자로 써 선물했다. “한·미 간에 실크로드를 깔자는 의미였다”고 고 전 총리는 설명했다. 합죽선 글씨는 이면영 홍익대 이사장에게 부탁했고, 홍익대의 한 교수가 부채에 써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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