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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모여도 수사보다 인사 … 얘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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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08면

지난달 28일 국회 법사위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 후보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국회 법사위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황교안(전 부산고검장) 변호사에 대해 야당은 호된 청문회를 예고한 상황이었다.
먼저 ‘전관예우’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장관 후보 중 ‘전관예우 베스트 5’를 뽑았는데 1위가 황 후보자”라며 “최소임금자를 기준으로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모으면 1억2000만원이고 100년을 모아야 12억원이 된다”고 공격했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도 “차제에 공직에 나갈 분들은 로펌에 가지 않는 처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후보자는 “송구스럽다”며 자신이 받은 급여에 대한 기부 의사를 밝혔다. 그가 담마진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황 후보자는 “경위가 어찌됐든 늘 마음의 빚으로 생각하며 지내 왔다”고 자세를 낮췄다.

장관 인준 미뤄지고 총장 선임 미궁…검찰은 지금

#최근 기자와 만난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총장 후보자가 누가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지난달 초 검찰총장후보추천위가 3명의 후보를 천거했는데,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자 답답해서 한 말이었다. “어차피 차기 장관이 제청할 거면 왜 먼저 추천을 해서 후보자들을 장기간 시달리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간부는 “3명 후보자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현직 검사들은 내심으로 낮은 기수가 되길 원할 거다. 겉으로 말을 못할 뿐이지…”라고 말했다. 얘긴즉슨 이랬다. “현 정부가 검사장 숫자를 줄이기로 한 만큼 현재 검사장 승진을 기다리는 인사들 중 상당수가 승진하기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위 기수들이 빠져 주면 인사에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한다.”

요즘 검찰의 관심은 본업인 ‘수사’보다 ‘인사’에 쏠려 있다. 둘만 모여도 온통 인사 얘기다. 당장 황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는 4일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장관이 국회 인준을 통과해 임명되면 곧 검찰총장 후보자도 제청될 것이다. 그래서 검사장 승진 직전에 있는 사법연수원 19~20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장급 인사들도 모이면 항상 인사 얘기로 시작해 인사 얘기로 끝난다. 그래서 검사들도, 기자들도 “서초동이 뒤숭숭하다”는 얘길 입에 달고 산다. 지난해 11월 말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물러난 뒤 3개월이 넘도록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황 후보자가 장관 인준의 문턱 앞에 서 있지만 낙마위기를 넘기고 장관이 되더라도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사상 초유의 검란 사태와 그 사태를 촉발하기까지 벌어졌던 ‘향응 검사’ ‘성추문 검사’ ‘브로커 검사’ 등 일련의 추문으로 검찰이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황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면 우선 4개월째로 접어든 검찰총장 공석 사태를 해소하고, 술렁이는 검찰조직을 안정시킬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검찰 조직의 신뢰 회복을 위한 각종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박 대통령의 공약인 ‘중수부 폐지’는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안에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신임 법무부 장관은 일선 검사들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중수부가 맡았던 거악 척결 업무를 담당할 조직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이는 청와대 및 정치권과 연계된 사안이어서 법무부와 검찰의 의도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아직까지 민정비서관을 결정하지 못한 청와대와 법무부-검찰 간의 소통을 원활히 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검찰총장 후보자는 권재진 장관이 제청할 의지를 갖고 추천인사위를 열어 3명의 후보자를 결정했지만 결국 권 장관이 제청하지 못하고 정부를 떠나게 됐다. 새 정부의 첫 검찰총장을 전 정부의 장관이 임명하는 게 옳으냐는 논란 속에 황 후보자가 지명되면서 자연스레 공이 신임 장관 쪽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와 관련, 여권 일각에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검찰총장 인사위를 새롭게 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그럴 경우 박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현재 추천된 3명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어 정치적 부담도 예상된다.

성대 출신 일색인 사정라인 여파에 관심
황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원론적이지만 추천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합법적으로 추천위가 추천한 3명 중에 총장을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보고받은 바 없어 알 수 없지만 법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추천된 3명의 후보자는 연수원 14기 출신의 김진태(총장 권한대행) 대검 차장과 채동욱 서울고검장, 15기 출신의 소병철 대구고검장이다. 이들에 대해 검찰 안팎에선 “누가 돼도 검찰을 잘 이끌 것”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14기 두 명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면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들보다 선배 기수들이 없어 줄줄이 옷을 벗는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한 전 총장의 사퇴 이후 총장 대행을 맡아 조직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채 고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수수사통으로 이 분야 선후배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15기인 소 고검장은 기획과 수사를 두루 거친 기수 내 선두주자로 조직 안팎의 신망이 높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나란히 약점이 있다. 황 후보자가 병역면제로 국민의 시선이 그리 좋지 않은 가운데 김 차장은 아들이, 소 고검장은 본인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 채 고검장은 여당보다는 야당 쪽 인사들과 가깝다는 얘기를 듣는다. 박 대통령으로선 검찰총장 청문회 통과 여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검찰 간부는 “황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무차별 공격을 받는 모습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검찰총장 청문회도 너무 흠집 내기로 흐를까 걱정”이라며 “검찰 출신들이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특권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것 같다. 검찰 스스로 반성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검찰 조직을 새롭게 세우는 일은 신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핵심 과제다. 우선 대검 중수부의 폐지 이후 정ㆍ관계 및 대기업 관련자들의 수사를 어디서 맡아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중수부 관계자는 “역대 정권에서 보면 대부분 임기 초에 중요한 사건이 터졌다. 이번 박근혜 정부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폐지를 앞둔 중수부가 수사 주체가 될 수 없다면 당분간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수사를 진행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예상했다. 일선 지검이나 지청에서 대형 사건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검찰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국민의 부정적 시각을 해소하기 위해 검찰 개혁에 매진해야 하는 점도 신임 장관과 총장의 과제다. 이와 관련, 정홍원 국무총리와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황 후보자, 곽상도 민정수석 등 이른바 사정라인이 일제히 성균관대 출신으로 채워진 점이 어떻게 작용할지 관심을 모은다. 박 대통령의 “서울대와 고려대 중심의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담겨 있는 인사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번 청와대 비서관 인사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민정비서관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점도 검찰로서는 걱정거리다. 단지 인사가 늦어져서가 아니라 청와대 측이 “현직 검사를 파견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은 민정수석과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와 소통해 왔다. 그러나 이 중 한 축이던 민정비서관의 현직 검사 파견 원칙이 무너지면 당분간 청와대와 검찰 간에 핫라인을 복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래서 검찰 안팎에선 “신임 장관과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가 결정되는 이달 초와 검찰의 인사가 마무리되는 다음 달까지가 검찰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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