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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문화 곧 종말 '여성의 성'이 구원

중앙일보

입력

평화와 공존의 시대가 될 거라던 21세기의 첫 해는 테러와 폭격의 연기 속에 지나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해도 '전쟁의 해'가 도리 것이라며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그런데 9·11 테러사태의 본질은 '가부장제 문화간의 충돌'이라면서, 이제야말로 여성 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이들이 있다. 중견소설가 이경자(54) 씨와 여성 신학자 정현경(45) 씨다.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 등 주로 페미니즘 계열의 문제작을 발표해온 이씨는 지난해 9월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 성의 오지 루그호(湖) 주변의 모계사회 소수민족인 모소족과 한달간 생활하고 돌아와 최근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이룸) 를 냈다.

또 진보적 학풍을 가진 미국 유니언 신학대의 첫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인 정씨는 자신의 깨달음의 과정을 멜로 드라마처럼 쓴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1, 2』와 젊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십계명 『미래에서 온 편지』(열림원) 를 함께 출간했다.

두 사람의 개성과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메시지는 흥미로울 정도로 같다. 가부장제의 상처 속에서 곪아 터져가고 있는 이 지구촌은 결국 여성, 여성성이 구원 하리라는 것이다.

▶사회=두 분 책을 읽고 한국사회의 여성으로, 특히 두 분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입장에선 털어놓기 쉽지 않은 아픈 과거까지 속속들이 드러내는 솔직함이 우선 놀라웠어요.

게다가 이선생님은 루그호에 도착하자마자 생솔가지를 태워 절부터 올리셨지 않나, 신학자인 정선생님은 머리를 깎고 히말라야 산속을 헤매다 오셨지 않나…. 일종의 '신기(神氣) '까지 느껴지더라고요.

▶이경자=그랬어요? 난 루그호를 보는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을 뿐이에요. 이곳이야말로 '어머니의 땅'이다 싶었죠.

여성의 자궁, 음부처럼 보였거든요. 사실 여성의 지위가 많이 높아진 것 같지만 내면의 핵심은 그대로 아닌가요. '가부장'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가부장'이라는 공기와 물을 먹고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영혼의 충격을 받은 셈이었죠.

***잉태하고 보살피는 모성

▶정현경=동감해요. 저도 히말라야에서 많은 상처를 치유받고 왔어요. 하지만 이제 그 가부장적 문화도 막바지에 달한 것 같아요.

9.11 미국 테러사태만 해도 사람들은 여러가지 시각으로 해석하지만 제가 보기엔 가부장적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인 미 자본주의와 탈레반이라는 가부장적 종교 이데올로기간의 전쟁이었거든요. 이제 가부장제의 종점이 멀지 않은 것 같다는 희망적 관측까지 했어요.

▶이경자=역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혁명투사'다운 발언이네요. 어쨌든 내 소설가적 감성만으로도 이렇게 파괴적인 가부장적 문명은 곧 스스로 종말을 고하겠구나 싶어요. 새로운 문명은 분명 여성성이 중심이 될 거구요.

▶사회=여성성이란 걸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정현경=물론 생물학적 성을 말하는 건 아니죠. 수천년 가부장제 문화가 만들어낸 수동적 현모양처형은 더더군다나 아니구요. 요즘 유행하는 '엽기녀' 역시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과장된 모습이죠.

우리가 말하는 건 따뜻하고 능동적이고 씩씩한 본래의 여성성, 즉 남성적인 신이 아니라 태초의 모계사회에서 '여신'을 모실 때의 인류가 가졌던 여성성을 말하는 거예요.

▶이경자=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모성,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보살핌의 심성 같은 거라고 할까요.

▶사회=여기서 '모계사회'란 개념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네요. 흔히 아마조네스 같은 호전적인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또 대뜸 난혼(亂婚) 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선생님 책을 보면 모소족 사회는 '아버지' '남편'같은 단어나 개념은 없지만 결코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이경자=물론이죠. 무엇보다 결혼이나 교제 문제는 모계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에요. 사람이 다른 성(性) 뿐 아니라 자연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곳이 원초적인 모계사회죠.

모소족 남자들은 주혼(主婚) 관계의 여성이 생겨도 죽을 때까지 분가하지 않고 어머니와 사는데, 난 정말 그곳에서 '진짜 남성'을 처음 발견했어요. '영원한 아들'로서의 남성 말이에요. 여성의 사랑과 보살핌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고, 또 어머니를 향해 본능적인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남성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사회=우리 여자끼리 얘기지만 사실 남편 보고 '큰아들'이라고 하는 건 그만큼 애정이 담긴 표현이잖아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괜히 자존심 상해하는 남자들이 많거든요.

▶정현경=가부장제가 만든 왜곡된 남성상 때문이죠. 남성들은 자신들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진짜 남자는 그거 사이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비아그라나 찾고….

▶사회=자, 그런데 여성성의 시대를 막연히 기다릴 수만은 없잖아요.

▶이경자=현경씨의 『미래에서 온 편지』를 읽고 이거구나 싶었어요. 아주 혁명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서더군요. 먼저 여성들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뭐가 진정한 여성성인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현경=그 중 첫번째가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는 거예요. 자연의 일부인 나 자신의 '참 자아(true self) '를 발견하고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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