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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난 이렇게 산단다"

중앙일보

입력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옷에다가 오줌을 쌌다. 요즘 들어서는 매일같이 오줌을 싸 기저귀를 차고 주무신다. 나는 할머니 옷을 빨 때마다 어서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형과 나는 할머니에게 되도록 물을 주지 않는다…."

"요즘은 내가 설거지를 한다. 왜냐하면 엄마가 퐁퐁을 못쓰게 하기 위해서다. 엄마한테, 학교에서 들은 우리 환경 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 준다. 하지만 엄만 내 말을 잘 안 들으신다. 내가 우리 선생님처럼 남을 잘 설득시키지 못하나 보다…."

열다섯살 아이들의 속내가 이렇다. 때로는 더할 나위 없는 철딱서니 같다가도, 때로는 애늙은이처럼 어른조차 무안하게 만드는….

1990년대 중학생들이 쓴 글과 문집,한국글쓰기연구회 회보에서 고른 글들을 모은 신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은 이처럼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술주정뱅이 아빠, 엄마의 가출, 갑자기 집안에 몰아닥친 채권자들 얘기 등 아픈 상처와 그늘, 그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가냘픈 몸짓이 느껴진다.

또 한편으론 인기가수에 푹 빠져 공부는 나 몰라라 하는 짝꿍이나 복장검사에 걸린 뒤의 화장실 청소 같은 가벼운 일상사를 들으며 함께 웃어볼 수도 있다.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고등학생들의 퍼덕임을 담은 『날고 싶지만』 역시 어떤 교훈적 결론을 내리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소재도 식구와 친구, 집안과 학교 얘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머니 자리를 대신해 살림하랴 바쁜 아이, 어수선한 집안 형편에 스스로도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아이, 취업을 앞둔 아이 등 다양한 삶의 고민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줄 뿐이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비행이나 탈선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기 만하다.

이오덕 선생은 학부모는 물론 교육행정가와 정치인들도 이 책을 꼭 읽어보도록 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학생들의 글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환히 비쳐 보이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 속에 우리 모두의 절망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어눌하고도 솔직한 표현이 읽는 이의 마음의 문을 더욱 활짝 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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