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글 취임 연설서 미국 역할론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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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지만 관여(engage)는 해야 한다.”

 척 헤이글(사진)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헤이글 장관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제24대 국방장관 취임 선서를 마친 뒤 한 첫 연설에서 “미국은 지난 역사와 마찬가지로 세계 속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 역할은 지혜롭게(wisely)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헤이글 장관의 고향인 네브래스카 출신이면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존 워스 중사가 새 국방장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날 취임식은 치러졌다. 헤이글은 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역대 미국 국방장관 중에서 베트남 참전군인 출신은 그가 처음이다.

 헤이글은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여러분에게 하라고 부탁하지 않겠다”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도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나는 업무에서 늘 정직할 테니 여러분도 그러길 바란다”고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출신인 헤이글은 역대 국방장관 중 처음으로 상원 인준 과정에서 야당(공화당)으로부터 의사진행 방해인 필리버스터를 당했다. 표결 결과 100명의 상원의원 중 58표를 얻어 역대 국방장관 중 표도 가장 적었다. 그래서인지 취임식에서 유난히 도전과 과제를 역설했다. 그는 “지금은 어려운 시기고, 커다란 도전의 시기”라며 “하지만 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실수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며 “하지만 결과는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헤이글은 의회가 연방 재정적자 감축 방안에 합의를 하지 못해 10년간 자동적으로 예산이 1조2000억 달러 감축되는 ‘시퀘스터(예산 자동 삭감)’를 첫 과제로 맞이해야 한다. 시퀘스터는 3월 1일 발동된다. 다른 분야도 문제지만 국방예산의 경우 9월까지 450억 달러를 감축해야 한다. 이미 국방부는 80만 명에 달하는 군무원 전원에게 4월부터 1주일에 하루씩 강제로 무급휴가를 가야 한다는 지침을 정했다. 전투기와 함정 등의 훈련 횟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헤이글은 “예산 삭감 조치는 현실”이라며 “우리는 그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전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자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를 생각하며 일하자”고 호소했다. “여러분이 내 팀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내가 여러분의 팀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단합도 강조했다.

 세계 전략에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전통의 동맹을 활성화하되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더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며 “우리의 동맹국들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사 마지막 문장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일하러 갑시다.” 

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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