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소풍가는 날|몰상식한 「상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S국민교 자모회 간사들은 긴급소집을 받고 학교에 모였다. 간사는 모두 7명이다. 교감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어느 빈 교실을 내주었다.
아마 어제도 어떤 학년의 자모 간사들이 모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의 안건은 「소풍가는 날을 위한 긴급 대책」이었다. 의견들은 분분했다. 저마다 간사들은 유창한(?) 주장들을 내세웠다. 『…그럼 닭은 「석이」어머니가 준비하세요. 우리들은 밑반찬을 마련할께』어느 간사의 발언이다.
『아니, 그럴 것이 아니라, 돈을 얼마씩 공동부담해서 공동구입으로 합시다. 반찬은 「X관」에서, 초밥은「X진」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 「버너」가 있으니까 야외에서도 불고기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의견들은 대개 그쪽으로 기울었다. 한데 누가 기발한 제안을 하나 했다.
『선생님의 거마비(거마비)는 어떻게 한담…』
그렇다! 간사들은 그 일을 깜박 잊고 있었다. 추렴의 액수를 조금 더 추가하기로 했다. 간사 일인당 2천5백원씩. 그 자리에서 척척 돈을 꺼내 어느새 두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있는 자모도 있었다.
어떤 자모는 『우리 아이 편에 돈을 보내겠다』는 양해도 얻는다. 긴급 회의는 무난히 끝이 났다.
소풍가는 날. 산록(산록)에서는 일대 향연이 벌어졌다. 선생님은 3천수백「칼로리」의 몇 배는 되게 영양식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향연을 위해 준비된 것의 3분의1이 처분되었을까 말았을까 였다.
『하늘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상』-선생님이랑 아이들은 즐겁게 합창도 했다. 참말 이날은 즐거운 날이리라. 그러나 어느 한구석엔 울상이 된 아이들이 한 무리 있었다.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도, 선생님의 손길에서도, 즐거운 노래 속에서도 몯 제외된 이 아이들.
그들은 어머니가 착실히 싸주는 도시락과 사탕 몇 알과 사과 다섯 개로 오늘의 즐거운 향연을 맞았다. 즐거운 이날에 그들은 별로 즐거울 것이 없었다. 누구의 소풍날인가를 혼자 생각할 정도로-. 『우리들의 날인가? 선생님의 날인가?』고 아이는 차라리 어머니 말씀대로 집에서 놀걸 그랬다. 이때 「경희」는 쿨쩍쿨쩍 울면서 다닌다. 아이들은 웬일이냐고 다가서며 물었다. 그 아이는 봉투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무슨 봉투일까? 그 아이는 흐느끼면서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드리라는 봉투』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소풍날은 아무튼 이렇게 희비(喜悲)속에서 저물었다. 날이 갈수록 소풍가는 날 학교를 결석하는 아이들은 많아간다. 그날의 즐거움은 자꾸 사라져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