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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성공 정착에 초조해진 영국

중앙일보

입력

새해와 함께 유럽 12개국은 단일통화 유로시대를 맞았지만 유럽의 자존심이라는 영국 사람들의 심사는 그리 편치만은 않다.

1일 일상 생활 속으로 파고든 유로화는 일단 성공적인 데뷔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유로화는 2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강세를 나타냈다. 힘있는 국제통화로서의 위상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소식에 접할수록 영국인들의 초조감은 커지고 있다. 유로화를 언제 도입할지 아직 일정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국 경제와 파운드화에 대한 믿음이 큰 것은 좋으나 자칫 유럽경제통합이란 큰 물결에서 탈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지는 2일 영국이 유로화 가입에 필요한 여건이 충족됐는지 평가하는 작업을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유로화 조기 가입을 시사한 것이다.

FT는 피터 헤인 영국 유럽담당장관의 말을 인용,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이 유로화 가입 여건의 평가시한으로 당초 정했던 2003년 6월 6일까지 평가를 미루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헤인 장관은 "유로화를 쓰는 경제권에서 영국이 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토니 블레어 총리가 늦어도 내년 초까지 평가를 마치고, 결과가 좋으면 내년 6월 또는 가을에 유로화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물론 반대의견은 아직도 많다.잭 스트로 외무장관은 유로화 가입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재무부도 "평가시 기준으로 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영국은 유로 사용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동시에 파운드화에 대한 국민들의 애착이 강해 유로화 가입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는 줄곧 가입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 "유로화 도입 초기의 어려움은 장차 유럽통합이 가져올 충격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유로의 성공적인 정착은 영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유로 현금 통용이 경제에 직접 끼칠 영향보다는 각국 국민이 자국통화로 상징되던 정체성을 버리고 단일통화를 통해 범유럽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유럽의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이 급속히 통합의 물살에 빨려드는데 영국만 이를 등한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미 영국의 많은 상점들은 유로화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시간이 문제일 뿐 영국도 언젠가는 유로화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FT는 "일단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절차에 들어가면 유로화에 부정적인 영국인들의 생각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훈 기자 lj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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