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장롱 속 사찰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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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계종은 지난 21일 전국 사찰에 있는 불교 문화재를 일제조사하는 10년 계획의 첫 성과로 지난해 강원도의 사찰 1백9곳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 강원도에는 모두 3천2백점의 사찰 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에는 지금까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사찰들의 '장롱 속 문화재'도 7백61점이나 포함돼 있다.

최근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극심했던 절도범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주지들이 꽁꽁 감춰뒀던 불교 보물들이 이번에 세상 빛을 본 것이다.

절 재산의 하나로 여길 뿐 문화재적 가치를 알길 없는 '문외한' 스님들에 의해 냉대받던 문화재들도 이번 조사에 참가한 학계 전문가들의 감식을 통해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기도 했다.

문화재청의 예산 지원을 받은 조계종의 이번 조사는 바람직하고 의미깊은 것이지만 진작 했어야 할 일을 이제서야 착수했다는 점에서 낙후된 우리의 문화재 보호체계를 드러낸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수탈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겠지만 일제(日帝)는 이미 30년대에 조선의 불교 문화재를 전수조사했다.

반면 해방 후 50년이 넘도록, 일제의 조사 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갈줄만 알았지 눈에는 친숙한 불당이나 불상, 탑과 부도가 어떤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조사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계종 관계자의 표현대로 "관리하고 보호하고 싶어도 과연 어떤 문화재들이 어떤 절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관리하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파손당하거나 도난당해 복원하려고 해도 변변한 사진 한장 남아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불교 미술을 찬란히 꽃피웠던 과거에 비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은 올해에는 전라북도와 제주도의 사찰 1백57곳을 조사한다. 지난해 5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던 조계종은 올해는 조사 대상이 늘어나는 만큼 탄력적이고 현실적인 예산 증액을 바라고 있다.

우리 주변에 이번에 빛을 본 불교 문화재처럼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문화재들은 없는지 걱정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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