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민중미술 오간 자유인 여운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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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을 지키던 미술 동네의 그리운 얼굴 하나가 또 졌다. 자신을 ‘진정한 건달’이라 부르며 예술가의 초상에 충실하던 화가 여운(사진)씨가 25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66세. 한양여대 실용미술과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지리산의 원초적 에너지를 그리고 싶다던 그는 “지리산은 푼수, 그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전남 장성 출신으로 홍익대학교와 대학원 서양화과를 나온 여 교수는 1970년 캔버스에 신문을 붙이는 개념적 작업을 선보이며 전위적인 신진 화가로 주목받았다. 1970, 80년대 군사독재 시대를 통과하면서 역사와 현실에 눈떠 민중의 삶과 정서에 뿌리내린 민중미술 화가로 나섰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을 지낸 뒤 후배들에게 “민족·민중이 또 하나의 관념이 되어 우리를 가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 타고난 자유인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듣고 본 상식을 이야기하는 현실주의 화가였다. 그림의 밀도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그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했다. 80년대 검은 목탄과 질감이 부서져 내리는 파스텔로 ‘검은 소묘’를 그렸다. “내 천성이 밤길을 걷는 사람”이라며 이 땅을 흑백 풍경으로 묘사했다.

 고인은 이런 서사성으로 문인들과 교우가 두터웠다. 원로 시인 신경림씨는 “여운 화백의 모더니즘 체험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은 시하고 통하는 게 참 많다”고 평했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지난 해 12월 등단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신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며 화가 여운에게 특별 제작한 전집 한정판 한 질을 증정했다. 하지만 병석에 있던 고인은 자리에 나오지 못했 다.

 장례는 민족미술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오의정씨와 딸 소연·선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3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기 파주시 약현성당 묘역이다. 02-2072-2034.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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