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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권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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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국회본회의장에서 야기된 오물소동사건은 정부각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것 같다. 국무위원들은 간담회를 개최하고 대책을 논의한 끝에 『이와 같은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는 정부의 권위와 위신을 위하여 국정을 보좌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일괄 사퇴를 결의, 즉각 정 총리는 대통령에게 그 의사를 표명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이번 사건은 정부각료들에게만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도 하나의 중대 「쇼크」이었음에 틀림없다. 김 의원 자신에 대해서는 원내에서 징계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나, 징계의 유무가 사건의 중대성을 백지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회사무총장도 책임을 통감하여 의장에게 사표를 제출하였다고 하나 이것 역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방법일 수는 없다. 김모 의원의 점잖지 못한 행동은 그 동기가 어디에 있든 면책특권에 해당되든 안되든 국민 일반으로부터 냉엄한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질의응답에 출석한 국무위원들에 향하여 이를 형사 피고인으로 간주하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매욕을 가하는 것은 적어도 국정을 논하는 신성한 의정단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혹 구두를 통하여 불유쾌한 연설이 내왕하는 일은 외국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나, 이번과 같은 사태는 참으로 세계 의정사상에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회 만능」이라고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의원들이 법률의 정신과 질서를 이탈하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스스로 국회의 권위를 짓밟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국회자체의 존재이유를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의회정치의 본산인 영국에서도 소위 국회의 만능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 만능은 법률의 정신과 질서를 초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사하며, 국정을 감사하고 또 시정을 건의하는 등 국회가 지금 담당 수행하여야 할 과업은 산적되어 있다. 사회와 정부 일각의 부정부패를 논하는 것은 좋다. 그것은 장래에 있어서의 시정을 그 목적으로 하는 건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국회의원은 판사나 검사나 경찰관이나 행형 관리로 자처하는 행동을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스스로 맡겨진 위치에서 문자그대로 국정을 논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국회의원은 주장과 질문에 있어 크게 흥분한 나머지 호된 극언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종류의 발언은 확실히 이성적이며 현명한 것이라고 칭송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법치국가에서 법치주의를 흐리게 해 버리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법치주의를 흐리게 하는 주장은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견해로 해석되지 않는가. 우리는 도저히 이와 같은 사상을 건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왜 『법대로 처리하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성과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와 정부의 일각에 부정과 부패와 무능이 깃들여있다면 국회의원은 이를 규탄하고 그 책임을 물으며 새로운 시정책을 논의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권리는 국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신성한 권리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국정을 논의할 권리를 신탁 받은 것이지, 거치른 감정의 폭발을 신탁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국회는 그 자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한층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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