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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코믹액션쇼 '아프리카'

중앙일보

입력

내년 1월 11일 개봉할 '아프리카'는 펑키 코믹액션쇼를 표방한 영화답게 도발적인 설정에 통쾌한 줄거리를 담고 있다.

주인공들의 반란은 우연히 권총 두 자루를 손에 넣으면서 시작된다. 일이 잘 안풀려 의기소침해 하던 대학생 지원(이요원)과 소현(김민선)은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빌린 차 안에 권총 두 자루를 발견한다.


이 총은 형사인 김반장(성지루)과 조직폭력배 중간보스 날치(이제락)가 도박판에서 판돈 대신 걸었다가 밤무대 가수 리키(박일준)에게 잃은 것. 소현의 남자 친구는 소현의 환심을 사려고 차를 훔쳤다가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원과 소현은 서울에 돌아가는 대로 주인을 찾아 돌려주기로 마음먹지만 돌발사태가 이어져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다. 더구나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시골 다방의 영미(조은지)와 자신을 농락한 남자에게 복수를 꿈꿔오던 진아(이영진)가 차례로 합류하면서 사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편 김반장과 날치는 이들을 추적하나 번번이 허탕만 친다. 반면에 이들을 흉내낸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사이버공간에서는 `네 명의 혁명적인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란 뜻을 지닌 팬클럽 `A.F.R.I.K.A(Adoring Four Revolutionary Idolsin Korean Area)'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중견 신승수 감독은 노련한 솜씨로 4명의 여배우들을 조율해 개성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룬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이요원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혜주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팀의 리더 역할을 훌륭히 해냈고 '눈물'에서 재능을 선보였던 조은지는 좌충우돌하는 폭소연기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김민선과 이영진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보여준 대로 각각 새침데기다운 매력과 중성적인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델마와 루이스'나 '셋 잇 오프'를 연상시키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썩 괜찮은 페미니즘 영화의 탄생을 기대하던 관객을 실망시킨다. 이른바 `조폭 코드'를 드러내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해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빼앗아가고 통쾌한 감동을 값싼 웃음으로 희화화시키는 것이다.

지원과 소현은 겁탈을 시도하는 불량배나 수작을 걸어오는 호색한에게 권총을 난사하고 진아는 사랑을 배신한 옛 애인에게 앙갚음한다. 영미도 `여자에게 미모는권력'이라는 세태에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남성성을 응징하거나 고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 속에서 만난 조폭에게 친절하게 찌개를 끓여주는가 하면 `실시!', '동작봐라!' 따위의군대식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조폭 코드'가 여성성과 대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웃음을 유발하는 흥행요소로 쓰였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신의 허벅지에 권총을 쏘는 김반장의 연극과 주인공들이 팬클럽 회원들의 시위대열에 합류하는 것만으로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눈 녹듯이 해결되는 결말도 의아스럽다.

처음부터 다른 기대를 품지 않은 채 황당무계한 코미디로 대하면 이런 실망감과 배반감도 느낄 까닭이 없겠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발상이 신선했고 출발이 산뜻했다.(서울=연합) 이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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