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B와 함께 이사하는 진돗개 '청돌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에 기여한 이인 KAIST 교수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지단]

대통령으로서 1827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인 24일 이명박(MB)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 오후 4시쯤이다. 5년 전 2월 25일 오후 1시쯤 청와대 본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4만3827시간을 머무른 곳과 ‘작별’하는 셈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이 대통령 스스로 “원 없이 일했다”고 말한다. 그 사이 이동거리만 지구 22바퀴였고 3842건의 행사를 치렀다. 하루 평균 483㎞를 움직였고 2.1건의 일정이 있었던 셈이다.

그의 마지막 날도 대통령으로서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아침부터 청와대 본관을 나설 때까지 5건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첫 손님은 전 덴마크 총리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의장이다. GGGI는 이 대통령의 ‘녹색성장’ 비전이 담긴 곳이다. 녹색성장에 대한 집념은 지난해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이라 할 녹색기후기금(GCF)의 송도 유치로까지 이어졌다. 덴마크는 2011년 우리나라와 ‘녹색동맹(Green Alliance)’을 맺은 우방 중 우방이다. 이 대통령의 ‘녹색’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일정이다.

MB는 곧 이어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류옌둥(劉延東)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만난다. 류 위원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과 후 주석은 그간 10번 만났다. 마지막 만남은 지난해 9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였다. 평소 로봇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딱딱한 스타일의 후 주석은 그날 이 대통령을 VIP라운지에서 보곤 가까이 다가와 두 차례 포옹했을 정도로 친밀감을 드러냈다. MB 스스로도 “한·중 간 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취지로 말한다.

이후엔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및 청와대 수석들과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는다. 5년 전 사저를 나선 뒤 대통령으로서 첫 행선지가 현충원이었다. 당시 ‘국민을 섬기며 선진 일류 국가를 만드는 데 온몸을 바치겠습니다’란 글을 남겼던 MB가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엔 순국선열들에게 어떤 보고를 할지 주목된다.

오후엔 역시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마지막 정상외교를 한다. MB가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정상으론 31년 만에 태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 두 정상은 태국판 4대 강 개발 프로젝트 격인 12조4000억원 규모의 차오프라야강 등 주요 하천 25개 유역에 대한 종합관리계획을 두고 대화했었다. MB는 당시 “4대 강 사업은 국민 삶의 질과 관련된 것이다. 수자원 관리 차원을 넘어 의료·건강·스포츠·레저·문화·지역경제 등을 종합 관리하는 것으로는 세계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잉락 총리는 “대한민국의 강 문제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화답한 일이 있었다. 태국 측에선 “물에 가장 정통한 대한민국과 이 대통령의 조언을 구한다”고 했었다. 올 2월 수자원공사가 태국 물관리사업의 최종 예비후보에 들어 1차 관문을 통과한 상태다. 4월 최종 낙찰을 앞두고 있는 만큼 두 정상 사이에 관련 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후 4시 이 대통령은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전·현직 청와대 직원들이 환송하는 가운데 청와대를 출발해 논현동 사저로 향한다. MB는 지난주 몇 차례 직원들과 만나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은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니 헤어진다고 착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여러분 수고했고 고맙다 미안하다”고 했었다.

이 대통령 내외가 논현동 사저로 돌아가는 건 11년 만이다.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4년간 공관 생활을 했고, 그 이후 대통령 취임 때까지 가회동·삼청동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현동 사저는 신축 건물이다. 자칫 노부부에게 낯설 수도 있는 분위기를 ‘허물’ 동반자가 있으니 청와대에서 같이 지내던 진돗개 ‘청돌이’와 저먼 셰퍼드 ‘바비’다. 이 대통령은 특히 2009년 1월 출생한 청돌이를 아낀다. 이 대통령이 “출근길 나의 동반자 청돌이. 새 한 마리가 날아올라도, 나뭇잎 사이 햇살 한 줄기 스며들어도 거의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네요”라고 감탄할 정도로 ‘명민’한 개다.

MB는 비로소 ‘국정 최고 책임자’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통치권이 넘어가는 25일 0시까지는 아닐 거다. MB 스스로도 “25일 0시 1분에 잠자리에 들겠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o.kr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