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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들, 경찰 출신 변호사 찾는 까닭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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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최근 서울지방국세청 일부 직원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현재 경찰의 수사선상엔 10여 명의 국세청 직원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기업들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의 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받은 돈 중 일부가 국세청 고위 간부에게 전달된 단서도 경찰은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몇몇 국세청 직원은 경찰대를 졸업한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로펌 두 곳과 개인 변호사 사무실 한 곳이다. 경찰 수사라인의 간부도 경찰대 동문이란 점을 고려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요즘 경찰 사건수사 과정에서 경찰 출신 변호사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찰 수사를 잘 안다는 이유로 대형 로펌들이 이들을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 김앤장엔 김상환(60) 전 경기청장 등 9명이 있다. 광장·율촌 등은 지난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경찰 경력자들을 모셔갔다. 최근 그 숫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중형 로펌인 민은 아예 경찰대 졸업 변호사 4명으로 ‘경찰팀’을 꾸리고 있다.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전직 경찰 고위 간부를 고문이나 전문위원으로 위촉하는 법무법인도 있다. 어청수(58) 청와대 경호처장은 경찰청장 퇴직 후 대륙아주에서 고문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일부 법무법인에선 김석기(59) 전 서울경찰청장을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에선 ‘경찰 출신 변호사들이 블루오션’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경찰 출신 변호사들이 블루오션”
이들은 주로 경찰에서 수사하고 있는 형사사건들을 수임하고 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 개업한 뒤 대형 로펌으로부터 사건을 하청받는 사람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최근 경찰이 인지수사를 강화하면서 이들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인지수사는 자체적으로 얻은 범죄첩보를 바탕으로 시작한 수사를 말한다. 강·절도, 살인 등 강력 사건과 달리 사기·뇌물 사건 등 소위 ‘화이트칼라 범죄’가 많다. 2011년 기준으로 경찰이 처리한 전체 사건(175만2596건)의 23.7%(41만6557건)가 112 신고 이외 경로로 착수한 사건이었다.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경찰관의 숫자는 지난해 1만8348명이었다. 그 숫자를 3만 명까지 증원한다는 게 경찰청의 계획이다. 경찰 수사가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경찰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도 로펌들이 경찰 경력들을 찾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찰 출신 법조인들이 가장 기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찰에선 경찰이 1차 수사권을 완전히 갖고, 검찰은 기소를 위주로 하되 때에 따라 직접 수사하는 수사권 조정안을 내놨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이 수사권 조정 공약을 전면 철회할 가능성은 작다.

경찰 경력 법조인들의 전체 숫자는 사법시험 특별채용 출신이 44명, 사법시험·변호사시험 합격 경찰대 졸업생 150명 등 모두 합해 200명이 안 된다. 전체 변호사 1만2513명(지난해 12월 현재 대한변협 회원 수)에 비하면 아직까지 틈새시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찰의 기대대로 수사권이 조정될 경우 이들이 법률 시장의 한 축으로 나설 가능성은 상당하다.

경찰 출신들의 장점은 경찰 수사 시스템을 잘 안다는 점이다. 경찰은 검찰에 비해 수사 과정에서 상부의 지시가 일사불란하게 이행되지 않는 편이다. 수사 실무자들이 비교적 자율권을 갖고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미묘한 차이가 경찰 사건에서 경찰 경력 변호사의 특장을 살리는 데 힘이 되고 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3년간 경찰에서 근무했던 정강준(45) 변호사는 “경찰 실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경찰 분야 사건에서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사시 특채와 경찰대 졸업생이 큰 축
경찰에서 법조인으로 전직하는 경로는 우선 사시특채 출신이 있다. 경찰은 1984년부터 사시 합격자를 경정으로 특채하고 있다. 이전에도 사시 합격자가 경찰에 입문했지만 84년 처음 제도화됐다. 경찰의 역량을 기른다는 취지로 사시를 비롯해 외무고시·행정고시 합격자를 영입해 온 것이다. 사시특채의 경우 지난해 3명을 뽑는 데 36명이 몰렸다. 지금까지 44명의 사시특채자 중 28명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직에선 김정석(51) 경찰청 차장이 최고위직이다. 84년 사시특채로 경찰에 들어와 해양경찰청장까지 역임했던 이승재(60) 변호사는 “우리 연수원 14기를 기점으로 경찰 고위직을 지냈던 사시특채들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수사 실무자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또 다른 경로는 경찰대 졸업생들이다. 82년 경찰대에 입학한 조성훈(49) 변호사를 시작으로 지난해 12월까지 사시 합격자가 134명, 변호사 시험 합격자가 16명이 나왔다. 87년 입학생 강승수(45)·고태관(44) 변호사는 경찰대 재학 중인 90년 사시 32회에 합격한 경우다. 현재 경찰대 졸업생 중 변호사는 45명이며, 경찰엔 25명이 남아 있다. 법원(29명)이나 검찰(10명)로 간 졸업생도 있다. 경찰대를 나온 허금탁(42) 변호사는 내곡동 특별검사팀에서 특별 수사관으로 활동했다.

일선 수사 경찰 입장에선 이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같은 동문 변호사들을 대할 때 더 그렇다고 한다. 개인적 친분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판 전관예우가 우려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고태관 변호사는 “경찰 조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는 “경찰은 경찰대 말고도 사시특채·간부후보생·순경 출신 등 구성이 다양하다”며 “수사인력도 많아 일일이 개인적 친분을 맺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건 브로커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 경찰서에 오래 근무한 전직 경찰관들을 사무장으로 쓰면서 사건 수임을 중개하거나 사건 정보를 빼내오는 것을 말한다. 고 변호사는 “사건 브로커는 개인의 문제이지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아직까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현재 경찰 경력들의 활동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대형 로펌의 경우 검찰 출신과 함께 팀을 짜는 경우가 많다.

부산경찰청장을 지냈던 김중확(57) 변호사는 “경찰 수사 단계부터 변호사 개입이 많아질수록 인권보장이 되고 수사의 공정성도 높아진다”며 “우리들이 많아지는 게 결국 경찰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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