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몸살하는 산모 가슴에 치즈를…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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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취리히 집 앞 공원에서 스페인 남편 호세 두아르트와 함께 딸 진아를 돌보고 있는 김진경 통신원.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스페인 남성과 결혼한 뒤 스위스 취리히에 정착한 김진경 통신원이 낯선 유럽에서 아이를 키우며 체험한 생활 속 얘기들을 중앙일보에 연재합니다. 여러모로 한국과 비교되는 일상의 모습들을 한국 아줌마의 시각에서 잔잔하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딸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육아가 쉬울 리 없지만 우리 부부는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느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와의 첫 가족여행 전날 남편은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긴장했었는데 이젠 좁은 기내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척척 갈아주는 건 물론 착륙 후 승객들에게 인사하는 여유까지 생겼답니다.

 한국과 유럽은 출산과 육아 방식이 참 다릅니다. 저는 출산 직후 다른 산모 두 명과 함께 병실을 썼는데 아직도 그때 받은 충격이 생생합니다. 이탈리아인 산모의 경우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손님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루 평균 서른 명씩은 축하인사 하러 오더군요. 온 유럽의 이탈리아인들이 그 병실로 다 모이는 줄 알았습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사진도 찍고 한 명씩 돌아가며 갓난아기도 안아보더라고요.

 더 놀라웠던 건 산모 부부의 행동이었습니다. 막 출산한 산모는 환자복을 입고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대신 남편이 침대에 누워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산모는 젖을 먹일 때만 잠시 침대에 등을 기대는 정도였지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니 “엄마는 그동안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으면서 충분히 친해졌으니 이제 아빠가 아기와 가까워져야 할 때”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간호사들이 덧붙이길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해야 나중에 아빠가 아기 보는 게 수월하다더군요.

 그제야 제 출산 과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낳았는데, 수술 후 처리를 하고 30분쯤 지나 병실로 올라가니 남편이 상의를 다 벗은 채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수술을 하면 출생 직후 엄마와 피부 접촉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신 아빠가 맨살에 안아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낯설었던 출산에 이어 모유 수유나 이유식 먹이기도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젖몸살이 생기면 한국에선 마사지를 받지만 스위스에선 가슴에 치즈를 바릅니다. 한국에선 이유식을 시작할 때 빈혈 방지를 위해 고기 먹는 걸 강조하지만 스위스에선 야채를 고루 먹는 걸 중시합니다. 감기 걸린 아이 돌보는 방식도 다르고 필수 예방접종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육아 서적과 친정 엄마의 조언, 스페인 시어머니의 충고와 스위스 소아과 의사의 처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보니 나중엔 ‘내가 왜 외국에서 애를 낳아 이 고생인가’ 후회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지요.

 답답한 마음에 헤바메(hebamme·출산 도우미)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그는 “내가 헤바메를 20년 넘게 하고 있는데 그동안 이유식 이론만 열 번은 바뀌었을 거다. 애 키우는 데 참견하는 이들이 오히려 애가 왜 우는지도 모른다”며 “한국식·유럽식 따지지 말고 그저 ‘엄마식’으로 하는 게 정답”이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 저희 부부는 한국식·스페인식·스위스식이 섞인 ‘짬뽕식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도 문제는 날마다 생깁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스페인 애 치고는 괜찮은 거야” “한국에서 이건 아무것도 아냐”라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여유가 생겼지요. 유난히 유행에 민감한 한국 엄마들도 좀 편히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유럽식 육아, 실은 별 거 없다는 걸 제가 보장한다니까요.

김진경 통신원 jeen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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