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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로 쌓은 탑 일상이 예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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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소비사회의 욕망을 쌓아올린 탑일까. 빨강·초록 플라스틱 소쿠리 6000여개로 만든 16m 높이 설치물 ‘카발라(Kabbalah)’ 앞에 선 최정화(52)씨. 카발라는 유대 신비주의의 용어로 ‘전래된 지혜와 믿음’을 뜻한다. [사진 대구미술관]

미술관 중앙홀 18m 공간에 빨간색, 녹색의 플라스틱 소쿠리 6000여개가 척척 쌓여 신전의 기둥처럼 매달렸다. 그 뒤엔 채색한 자석 조각들을 아무렇게나 모아둔 자석 놀이터가 아이들을 유혹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떡 버티고 있는 경찰 인형은 과거 고속도로를 지키며 속도위반을 막았던 소임을 마치고 관람객들을 놀래킨다. 최정화(52)의 개인전 ‘연금술’이다. 대구광역시 수성동 대구미술관에서 26일부터 6월 23일까지 열린다. 17일 준비가 한창인 대구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국내 첫 미술관 전시다. 뭘 보여주려 하나.

 "플라스틱. 가령 중앙홀의 ‘카발라(Kabbala)’의 경우 싸구려 플라스틱 소쿠리, 그 눈부시게 하찮은 것도 숭고할 수 있다는 것,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왜 이런 재료에 주목했나.

 "짬뽕문화, 발효문화에 관심이 많다. 내 작업엔 묵은지와 겉절이가 같이 등장한다. 우리는 너무 뺀질뺀질, 반짝반짝, ‘신삥’만 자꾸 만들잖나. 어제는 가는 게 아니라 오는 거다. 어제가 내일이 되어야 하는데, 자꾸 가는 걸로 잘라버린다.”

 소쿠리는 그의 손을 거쳐 ‘국제화’됐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물 옥상에 빨간 소쿠리로 만든 ‘욕망장성’, 지난해 런던 올림픽을 맞아 사우스뱅크센터의 기둥을 초록 소쿠리로 둘러싼 ‘시간이 지나면(Time after time)’ 등이 그랬다.

 최정화는 1990년대 변두리에서 반짝반짝 뽀글뽀글거리던 것들을 시각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온 인물이다. 홍대 회화과 4학년 때 중앙미술대전 대상(1987)을 받을 정도로 곧잘 그렸지만 졸업 후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다. 1989년부터 가슴시각개발연구소를 차려 지금껏 소장을 지내고 있다. 실내장식과 놀이문화가 주업무인가 하면, 미술 쪽에선 공공미술에 주력했다. 폐현수막, 바가지, 이태리 타올, 트로피 등 어딘가 조악한 것들이 불쑥 우리에게 복합적 함의를 띠고 다가올 때, 언젠가부터 그같은 현상을 ‘최정화스럽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들이 생겼다. 명륜동 서울여대 공사장에 재개발 현장서 주워온 711개의 문짝으로 가림막을 만들어 ‘가림막 예술’ 붐을 일으키는 등 요즘말로 ‘업사이클링’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카페 주인, 한때는 영화·무용의 미술감독까지 했다. 대체 정체가 뭔가.

 "그 모든 것이다. 정체가 없는 게 내 정체다.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나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해왔을 뿐이다. ”

 -데뷔한 지 30년이 가까워 온다. 이제는 재래시장·길거리에서 예술을 길어올리는 당신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후예들도 나온다. 이제 ‘이것도 미술이 될 수 있구나’ 하던 처음의 경이는 약해진 느낌이다. 원작의 위치가 상승한 건가, 아니면 한물 간 건가.

 “내가 했던 것은 사진 속 한 장면이 아니다. 그건 태도와 관점의 문제였다. 공간을 만들고, 관객들과 만나는 방법을 연출한 것이지 잡지의 한 페이지를 만든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계속 ‘바깥 미술’을 할 거다.”

대구미술관 김선희 관장은 “최정화는 가장 한국적이며,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오브제를 선택해 지난 30∼40년간 급성장한 우리 사회를 담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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